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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걷다) 기타큐슈 ② 무조건의 열정이 도시를 살리는 정답

중앙일보

입력

일본의 많은 대학과 기관들은 되도록 많은 일반인들과 함께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큐슈 대학이 십년 이상 실행하고 있는 ‘미생물 분해 관찰 프로그램’이 있다. 그리고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학 연구 기관과 기업의 의지가 필요하다. 대학과 민간 기업이 손잡고 벌이는 일종의 사업인 셈인데 그 과정 모두를 일반 시민이나 외부인이 관찰하거나 감시하며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독특하다. 지역 주민들과 외부 방문자들은 이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해 땅에 파묻힌 쓰레기들이 어떤 과정으로 분해하는지 실험하고 관찰한다. 단순한 체험학습 수준이 아니다.
이런 시스템이 처음부터 빛을 발한 것은 아니었다. 지루하고 까다로운 실험과정으로 인해 자본을 대던 기업이 손을 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관찰자 역할을 담당한 일반인들의 인내심이 턱 없이 부족할 때도 있었다. 정부는 이러한 미비점을 해결하고자 실험에서 필요한 예산의 절반을 보조해주는 등 지구력을 가지고 시스템 구축에 만전을 기했다. 그런 결과 2008년 현재, 일본의 재활용 처리 사업 수준은 단연 세계 최강이라 할 수 있다.
큰 자본을 필요로 하는 재활용 사업은 주로 페트병이나 기기설비, 자동차, 가전제품 등에 해당하는데 이는 대기업과 정부가 맡는 분야다. 그 밖의 사업은 중소기업들이 분배해서 해결하는데 주로 식용유나 비누 등을 다루는 일을 한다.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쓰레기가 전혀 발생되지 않는 에코타운을 정착시켜 그 과정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인데 현재 기타큐슈의 에코타운 관련 인력은 약 900여명에 달한다. 재활용 사업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만큼 고용은 앞으로 더욱 추가될 전망이다.
유해물질에 해당하는 각종 공업원료나 재료들이 하나둘씩 재활용 목록에 오르고 있다. 지난 2004년에는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도시 한쪽에 폴리염화비닐 처리장 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긴 싸움을 감내했다. 결국 주민들은 에코타운을 지향하는 정부의 노력에 협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시 환경산업 발전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이었다.
기타큐슈의 환경산업이 계속해서 상한 그래프를 그릴 수 있는 이유는 두 가지 세부적인 정책 덕분이다. 첫째, ‘무조건 쓰레기를 줄이자’는 정책이다.

키타큐슈는 1963년에 코쿠라, 야하타, 모지, 와카마츠, 도바타, 이렇게 5개 도시를 합병해서 만든 대형도시로 인구수만 백만 명이 넘는다. 그러니 자연히 쓰레기도 다른 소도시보다 많아 골치가 아팠다. 갖가지 수단을 다 동원해 봐도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정부는 1997년 7월부터 쓰레기 수거를 유료화 해버렸다. 예전엔 맘 편히 버렸던 쓰레기였건만 그 이후부터는 집안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며 각종 일반 쓰레기를 모두 돈을 지불하고 버리게 된 것이다. 봉투는 용량별로 우리 돈으로 약 팔천 원에서 이만 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지역민들의 반발이 무척 심했었다. 그러나 유료화 이전과 비교해가면서 정부는 계속해서 시민들을 설득했고 결국 쓰레기 수거 유료화는 도시에 안전하게 정착되었다.

지역주민들의 합의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고 쓰레기 문제 해결도 성공적이었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일반 쓰레기는 돈을 지불하고 버려야 하지만 재활용 쓰레기는 그렇지 않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일회용 쓰레기들이 예전보다 더 늘어났다. 이에 정부는 재활용 쓰레기마저 유료화로 전환할 방침을 검토하며 국소지역에서 시범으로 시행중이다.
에코타운 시스템이 제대로 정착된다면, 재활용 쓰레기가 증가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차피 다른 재료로 바꿔 쓸 수 있는 살아있는 원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주목할 부분은 재활용 시장의 부흥이 과연 성공적으로 잘 돌아갈 것이냐 하는 부분이다. 재활용으로 만들어진 물건이 팔리지 않는다면 에코타운 정책은 시장원리에 의해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시에서는 약 칠 년 전부터 ‘그린 판매’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백오십여 개 품목에 해당하는 재활용 물품들을 직접 판매하기로 했다. 일반 생활용품에서부터 사무기기, 자동차나 패션제품에 이르기까지 그 품목은 다양하게 늘어나고 있다.
다행히 결과는 나쁘지 않다. 커다란 수익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최소한 적자를 면하고 있기 때문에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친환경상품 구매운동을 벌이기도 하여 도시 곳곳에 재활용 전문 상점이 생겨나기도 했다. 지금도 에코페이퍼나 에코가구 등이 주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환경을 생각하면서 물품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 주민들 스스로 자부심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기타큐슈의 환경산업이 탄탄하게 발전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두 번째 정책은 ‘무조건 시민들을 끌어들이자’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환경문제 정책연구자들은 되도록 많은 홍보책자를 발행하고 시민교육시간을 실시하며 자신들의 뜻을 펼쳤다. 하지만 요즘의 젊은 정책가들은 대중들의 기호를 파악하는 데 주력한다. 일방적 계몽의 단계에서 벗어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책으로 발전한 것이다.
정부나 기관은 좀 더 기발하고 유쾌한 행사를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뱅크에 의뢰하거나 예술가들의 힘을 빌리는 등으로 노력한다. 국제박람회를 열어 쓰레기를 이용한 예술품을 만든다거나 손님들의 쓰레기를 모아 질량을 가늠해보는 실험을 하고, 동시에 그중 재활용으로 살려낼 수 있는 쓰레기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매년 성공리에 진행되어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 벤치마킹을 하고 있다. 소소하게는 지역의 회관이나 학교에서 주민과 아이들을 상대로 일명 ‘쓰레기 놀이, 기발한 재활용 대회, 재활용 기록’등을 실시한다.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기발한 재활용 대회의 상금이 우리 돈으로 약 800만원에 이를 정도로 거금이기 때문에 참여도가 무척 높다.
환경을 위한 도시의 노력은 정부 뿐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많이 퍼져 있어서 일본의 기타큐슈를 여행하다 보면 의외의 환경장치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도로가의 라면집이나 술집의 화장실을 들어가 보면 변기에 연결된 독특한 세면대를 볼 수 있다. 졸졸 흐르는 작은 물줄기에 손을 씻으면 그 물이 변기로 흘러내려가는 구조인데 이는 상당량의 물을 아낄 수 있는데다가 설비와 누수에서 세는 돈도 막을 수 있어서 매우 경제적이다. 도시에 들어서는 대형 건물들은 기본적으로 태양열 전지판을 지어 올리는 것이 추세이며 빗물을 받아 저장하는 탱크를 집집마다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삶의 방식을 바꾸는 문제와 연결된다. 그것은 삶의 열정을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타진하는 데 쏟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의 기타큐슈에서 배워야 할 게 바로 그 열정의 방향이다.

협조 / 이노우에 토시히코, 사계절 출판사 (번역 김지훈) 주요
참고문헌/ 세계의 환경도시를 가다 (이노우에 토시히코ㆍ스다 아키히사 편저)
기타 참고문헌 /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 (박용남), 친환경 도시 만들기 (이정현), 도시 속의 환경 열두 달 (최병두), 친환경 도시개발정책론(이상광)

워크홀릭 담당기자 설은영 e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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