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정정길 대통령실장, 소통 뛰어난 마당발 … ‘밤 약속’ 빡빡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경제상황은 어떠냐?”. 1일 오전 10시20분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이 마중나온 정정길(사진) 대통령실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대통령의 귀국 첫마디였다.

이에 정 실장은 국내 금융시장 동향을 비롯한 부재중 현안을 이 대통령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이 대통령의 방러 기간 중 정 실장은 청와대 수석회의를 주재하고 관계부처와 긴밀히 접촉하는 등 금융위기 국면을 지휘해왔다.

1일은 정 실장을 비롯한 ‘2기 청와대’ 수석진이 출범 100일을 맞은 날이었다. 쇠고기 파문 중인 지난 6월 23일 출범한 ‘2기 청와대’의 최대 고민은 쇠고기에서 세 달여 만에 금융위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정권 출범 직후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 땅부자) 논란을 낳았던 인사 파동에 이어 ‘쇠고기 결정타’를 맞은 이 대통령에게 실장·수석 전원 교체는 피할 수 없는 고육지책이었다.

“소통을 위해서라면 폭탄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본인의 말처럼 정 실장은 ‘소통’을 위해 캐스팅됐다. 운동권 학생-행정고시(6회) 합격-농림부 공무원-서울대 교수-한국 행정학회장을 거치며 얻은 마당발 네트워크와 소통의 기술이 발탁의 이유였다.

정 실장의 취임 일성은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의 역할이었다. ‘조용한 그림자 보좌’를 모토로 내걸었던 류우익 전 실장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의 모습엔 변화가 컸다. ‘얼리 버드(Early Bird) 증후군’ ‘노 홀리데이(No holiday)’ 등 ‘이명박 청와대’를 냉소적으로 규정했던 초기의 모습들이 많이 완화됐다.

그는 평소 “회의보다는 생각을 하고, 혼자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많이 한다. 이에 따라 직원들의 자유시간도 늘어났다.

토요 휴무제가 실시되고, 오전 8시에 시작하던 수석비서관회의 시간도 유연해졌다.수석들의 외부 강연도 잦아졌고, 청와대 직원들의 퇴근시간은 앞당겨졌다. 직원들 사이에선 “정 실장이 온 뒤에는 직원용 퇴근 버스들이 꽉꽉 찬다”는 얘기가 돈다. 찬반론이 엇갈리지만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훨씬 좋아졌다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정 실장은 튀지 않는 스타일이다. 수석들에게 재량권을 많이 준다. 수석들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할 때도 잘 배석하지 않는다. 장관들과 수석들이 이 대통령을 독대해 보고하는 횟수가 늘어나 소통이 원활해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대신 그는 각계 각층의 여론을 이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과천의 1급 공무원 대부분을 만났고, 전공을 가리지 않고 학자 그룹을 훑었으며, 중소기업인들은 물론 야당 의원들과도 수차례 회동을 할 정도로 그의 ‘밤 약속’ 스케줄은 빡빡하다. 정 실장의 화려한 인적 네트워크 때문에 청와대 내에선 그를 가리켜 ‘조용한 이수성’이라고 부르는 사람까지 있다. 친구와 지인들이 많기로 대한민국 1위라는 이수성 전 국무총리에 비길 만한 마당발이라는 것이다.

물론 좋은 얘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의견이 갈릴 때에는 다수 의견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거나 “류 전 실장에 비해 악역을 잘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1기 청와대에 비해 개혁 의지가 떨어졌다”는 비판적인 시각들도 있다.

청와대 내부의 확대된 자율성과 달라진 분위기를 실제적인 일의 성과로 연결시켜야 하는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다.

서승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