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靑進洞 해장국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조선조 초기에 서울에는 52개의 「방(坊)」이 있었다.「방」은 곧 오늘날의 동(洞)이다.그중 징청방(澄淸坊)의 일부와 수진방(壽進坊)의 일부를 합친 것이 지금의 청진동이다.종로구가 서울의 한복판이라면 청진동은 종로구의 한복판이니 청진동은 바로서울의 한복판인 셈이다.
조선시대부터 청진동에 상권이 발달하고 목로주점이 성시(盛市)를 이룬 데는 몇가지 까닭이 있다.우선 육조(六曹)거리와 육의전(六矣廛)거리가 교차하는 지리적 여건 탓이다.부유한 상인들은관리들과의 손쉬운 결탁을 위해 이곳에 터를 잡았 고,이들의 잦은 접선(接線)장소로 이용되기 위한 고급 술집들도 많이 생겨났다.이른바 「방석집」이라 불리는 요정이 중학천변을 중심으로 처음 생겨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민 상대의 목로주점이 성시를 이룬 까닭은 좀 다르다.고관대작들의 행차가 잦은 곳이었던 만큼 행차가 떴다 하면 서민들은 피신하기에 바빴는데 몰려든 곳이 바로 지금의 해장국 골목이었다는 것이다.행차도 피할 겸 요기도 때울 겸 이곳에서 사먹은 술국의 맛이 제법 괜찮다고 알려지면서 하위직 관리들의 발길도 잦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술로 시달린 속을 풀어주는 국이라 해서 술국이라고도 불리는 해장국은 지방에 따라 재료와 끓이는 방법이 저마다 달라 그 맛도 제각각이다.서울지방의 해장국은 쇠뼈를 푹 고아 끓인 국물에된장을 풀어 넣고 콩나물.무.배추.파 등을 넣어 끓이다가 선지를 넣고 다시 한번 푹 끓인 일종의 토장국이다.다소 쌉쌀한 맛을 내는게 서울 해장국의 특징이며 그 특징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청진동 해장국이다.
해장국집이 즐비했던 청진동 골목은 오랜 세월동안 서민술꾼들의애환이 깃들인 곳이었다.적은 돈으로도 하루 24시간 아무 때나찾아가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새벽에 찾아가 간밤의 숙취를 풀 수 있는 곳이 청진동 해장국집이었다.근자에 는 그 맛을 못잊어하는 외국인들도 많다.그 해장국집들이 도심재개발계획에 따라땅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그 지하에 1만8천여평의 공간을 만들어 「해장국 타운」을 조성할 계획이다.맛이야 달라질 까닭이 없겠지만 「해장국 골목」의 분위기 와 정취를 제대로 되살려낼 수있을는지 모르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