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中年>16.판매女王 이영자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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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주부들이 중년에 쉽게 시작하는 일이 판매직이다.현재 보험모집인으로 일하는 주부들의 숫자만도 거의 40만명에 이를 정도로 큰 밑천 안들이고 실적에 따라 가욋돈을 만들 수 있는 이런저런판매직들이 주부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학력이니, 성별이니 자격제한도 없고 오히려 주부들이 쌓아온 안면과 넉넉한 대인관계술을높이 사는 직종이라 더욱 괜찮다.
한불화장품의 서울지사장 이영자(李英子.53)씨는 그런 주부 판매군단의 일원으로 사회에 발들여 「판매여왕」이라는 그 분야 최고의 자리를 일군 주부다.오늘날 그의 한달 수입은 1천7백만원을 넘어 어느 대기업사장들도 부럽지 않다.
현재 파스퇴르우유 대리점을 하고 있는 남편과 1남2녀를 두고있는 李씨는 대구여고를 졸업하고 잠시 직장을 다니다 68년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가 됐다.애들을 키우는 틈틈이 배드민턴을 취미삼아 치기 시작한 것이 40세에 주부선수로 대 만에 다녀오는기회가 됐고 그 「우물밖 세상보기」가 『뭔가 달리 살아봐야겠다』는 것을 깨우치는 계기가 됐던 것.
『처음 판매일을 시작하던 84년 무렵만해도 세일즈직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아주 나빴지요.뭔가 일은 하고 싶은데 받아주는 곳은 없고,그래서 나름대로 「비전」을 갖고 시작한 일이지요.』그는 『세일즈맨이 수출 한국의 꽃』이라는 것을 10년전이나 지금이나 신념처럼 갖고 있다.
말의 시작과 끝맺음이 마치 물흐르듯 이어지는 빼어난 말솜씨며다양하고 풍부한 그의 표정은 만난 이가 누구든 상대를 그에게 꽉 붙잡아 두는 마력이 있는 것같다.
『판매는 과학이에요.말.표정.차림새 모든 것이 일체가 되어 상대를 압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를 설득해 팔 수 있지요.
』 그가 밝히는 판매술의 비결.무엇보다 「자신감」이 있어야 훌륭한 판매원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남의 집 초인종을 누를 때도 새끼손가락이 아닌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라는 것이 그가 다른 주부 판매사원들을 교육하며 거듭 강조하는 점.
李씨의 탁월한 판매술에는 그러나 천성적인 데가 있는 것같다.
그가 웅진출판사의 주부판매원으로 나선 바로 첫달에 2천3백만원어치를 팔았으니 말이다.그리고 3개월만에 총 5천만원의 판매실적을 올려 입사 6개월도 안돼 판매조직의 부장으로 승진한데 이어 거의 매년 초고속 승진을 거듭,91년2월에는 전무로 올라갔다.한불화장품의 서울판매조직을 총괄하는 지사장으로 옮긴 것은 92년.한불화장품은 설립 7년만인 지난해 5백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연고로는 안되지요.금방 바닥나 요.고객관리를 잘 해야지요.』 고객집에 인사하러 수박을 사갖고 가다 복잡한 버스안에서 수박이 깨져 난리치던 일이며 시동생한테 반품을 받고 남몰래눈물짓던 일등 고객을 만들고 유지한다는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李씨는 귀띔했다.
『한번 만난 고객은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李씨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간 것은 그의 고객들만이 아니다.7남매중 첫째딸인 그의 권유로 네명의 여동생들과 올케.사촌올케까지 차례차례 세일즈에 입문해 지금 다 상당한 판매전문가로 성공했다.
『고객에게 무관심하니까 문제지요.고객이 고마워하고 미안해할 정도로 왕처럼 모셔보세요.고객이 고객을 물어오고….우리 4천5백만명을 다 고객으로 만들 수도 있지요.』「판매여왕」 李씨의 근성은 누구도 못말릴 것같았다.
박신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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