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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 저만치 … ‘뱁새’ 된 한국마라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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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2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마라톤 지도자 대토론회를 열었다. 국내 지도자 50여 명이 참가한 이날 토론회는 위기를 맞은 한국 마라톤의 활로 모색을 위한 자리였지만 연맹에 대한 성토와 어려운 현실에 대한 개탄만 쏟아낸 채 “합심해서 열심히 하자”는 결론 아닌 결론으로 끝났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28일 베를린 마라톤에서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5·에티오피아)가 2시간3분59초의 세계 최고기록으로 우승했다. 한국 마라톤이 제자리걸음도 못하는 사이 세계 마라톤은 날개 단 듯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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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혀지다 다시 벌어진 세계와의 격차=남자 마라톤 한국기록은 2000년 2월 이봉주(삼성전자)가 도쿄 마라톤에서 수립한 2시간7분20초다. 1992년 2월 벳푸∼오이타 마라톤에서 황영조(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가 한국 마라톤 사상 처음으로 2시간10분 벽을 깬 이후 황영조-김완기-이봉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다섯 차례나 한국기록을 경신했다. 1991년 11월 김완기가 2시간11분2초를 뛸 당시 세계 최고기록(2시간6분50초·할리드 하누치·미국)과의 격차는 5분12초. 그랬던 걸 98년 4월 이봉주가 44초까지 좁혔다. 하지만 마라톤이 스피드 경쟁으로 바뀌면서 격차가 다시 벌어지고 있다.

◆90년대 한국 마라톤은 ‘사상누각’=황영조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은 마라톤 강국으로 떠올랐다.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이봉주), 94년 히로시마(황영조), 98년 방콕, 2002년 부산(이상 이봉주)까지 아시안게임 3연패. 한국 마라톤은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황영조·김원기가 은퇴하고 이봉주가 하향세를 타면서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한국 마라톤의 승전보는 들을 수 없게 됐다. 최경렬 육상연맹 마라톤 강화위원장(한전 감독)은 “박태환(단국대)이 나타났다고 한국을 수영강국이라고 할 수 있나. 90년대 한국 마라톤도 몇몇 ‘수퍼스타들’의 등장으로 반짝한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유망주 발굴, 인프라 구축 등을 못한 게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조급함 버리고 세계적 추세 따라야=99년 2시간6분 벽을 깬 하누치(2시간5분42초), 2003년 2시간5분 벽을 통과한 폴 터갓(케냐·2시간4분55초), 그리고 28일 2시간3분대에 접어든 게브르셀라시에. 이들은 5000m·1만m 등 트랙 장거리에서 기초를 다진 뒤 20대 후반 내지 30대 초반 마라톤으로 전향했다. 꾸준히 스피드를 유지해야 하는 트랙 장거리의 레이스 운영방식을 마라톤에 접목한 주인공들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10대 후반 내지 20대 초반부터 ‘마라톤 기대주’ 소리를 들으며 마라톤에 전념한다. 오인환 삼성전자 마라톤 감독은 “선수는 적은 반면 마라톤을 중시하다 보니 어릴 때부터 마라톤을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최경렬 위원장은 “어릴 때 트랙 장거리에서 기초를 다진 뒤 마라톤으로 옮겨가는 최근의 세계 추세를 우리도 따라야 할 것”이라며 “방향은 분명해졌으니 어린 선수들이 육상에 입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숙제”라고 진단했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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