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정계 은퇴 총선 변수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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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는 퇴장까지 깜짝쇼를 벌였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66) 전 총리가 자민당 의원으로선 아직 한창 나이에 급작스럽게 정계 은퇴를 표명하자 일본 정치권이 충격에 휩싸였다. 그는 ‘극장식 정치’‘포퓰리즘’‘원 프레이즈(one phrase·한마디) 정치’ 등의 유행어를 만들면서 2001년부터 5년5개월간 총리를 지냈다.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중국 등과 마찰을 빚었지만, 일본 내에선 구조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경제회생을 이끌어내 국민 사이에선 인기가 높았다. 그래서 그의 퇴임 이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가 잇따라 전격 자진 사임하는 등 자민당이 상당히 흔들릴 때마다 그의 총리 출마설이 끊임없이 나왔고, 정계 개편의 핵심 인물로 주목받았다.

고이즈미는 26일 자신이 속했던 자민당 내 최대 파벌 마치무라(町村)파 사무실을 방문해 파벌 최고 고문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상당역인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전 관방장관 등과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의원 의원의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원래 총리 퇴임 시점에 은퇴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 제약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자민당 내에서는 아소 내각 출범 직후 터져나온 고이즈미의 정계 은퇴는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이즈미와 각별한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는 “총선에 매우 큰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3년 전 고이즈미 정권에서 처음 국회에 진출해 ‘고이즈미 칠드런’으로 불리는 의원 79명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까 걱정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이에 대해 “도움이 되는 선거구는 파벌에 관계없이 적극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정계에서는 향후 총선 결과에 따라선 고이즈미 칠드런이 정계 개편의 키를 쥐고, 고이즈미는 여전히 정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유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후계자는 차남 신지로=고이즈미가 25일 가나가와(神奈川)현 요코스카)의 선거구 모임에서 은퇴 표명을 할 때 차남 신지로(進次郞·27)가 함께 있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이즈미의 은퇴 표명 직후 신지로가 일어나 “계속해서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출마 의사를 밝혔다. 신지로가 이번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 증조부인 고이즈미 마타지로(又次郞), 조부 준야(純也), 그리고 부친에 이어 4세 정치인이 된다. 고이즈미는 배우의 길을 택한 장남 고타로(孝太郞) 대신 일찌감치 신지로를 자신의 후계자로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간토가쿠인대를 나와 미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유학한 신지로는 2006년부터 1년여 미 싱크탱크인 CSIS의 미·일관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귀국해 아버지의 비서로 선거구에서 일하고 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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