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기고>韓總聯,당신들은 잘못하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87년6월 어느날 신세계백화점앞 광장에서 전경 1개소대가 학생 시위대에 포위돼있고 마침내는 무장해제됐지만 학생들은 아무도전경들을 두들겨패지 않았다.
학생들은 다만 전경들의 장비를 팽개치며 울분을 터뜨렸고,더러는 울었다.전경들도 울었다.시민들도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함께 울었다.
나도 시민들 사이에 있었고,그 조금 전에 다른 시민들과 더불어 학생들을 향해 전경들을 『때리지 마라!』 하고 외쳤다.그때학생과 시민들은 하나였다.
그때로부터 10년쯤 지난 뒤 한총련이라는 깃발을 앞세운 당신들은 시민들의 비난과 지탄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도처에서 쇠파이프로 비무장상태의 전경들을 개패듯 두들겨팼다.
그뿐만 아니다.당신들은 도로의 교통을 차단했고,남의 교정을 불법 점거해 기물을 불태우며 파괴했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고통을 주었고,인근 상인들의 생업을 방해했고,온 국민들로 하여금 의혹을 느끼게 했다.
당신들이 엿새동안 점거했던 연세대학교는 아예 폐허가 됐다.당신들은 지금 잘못하고 있다.야만적 폭력부터 그렇다.최소한의 이성이라도 포기되지 않았다면 전경들에게 그토록 무자비할 수는 없었을 것같다.맹목적 북한 선망은 또 어떤가.
지금은 관치(官治)반공 시대가 아니다.지금은 아무도 북한 사람들을 뿔난 도깨비로 오해하고 있지 않다.지금 우리는 우상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북한을,그 체제에서 인간성이 말살된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애를 실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혈육들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보고 있다.
과소비가 상시적인 근심거리가 될 만큼 과풍요를 오히려 버거워해야만 할 이 시대에서 굶주리고 있는 그들과,세계를 향해 구걸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그 체제의 치자들도 역시 거의 그대로 보고 있다.그러면서도 이를테면 기쁨조의 열락에 취해 호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그 체제의 치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모르고 있지않다. 그뿐만도 아니다.우리는 『서울은 불바다…』 이야기를 하던 그 표독스러운 눈빛과 목소리를 보고 들은 바 있고,그 땅의우상 하나가 죽었을 때의 저 소름끼치는 집단광란상태도 거의 그대로 본 바 있다.
목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소년이 맑은 눈빛 반짝반짝 빛내며 『해바라기가 태양을 따라가듯 저희들은 아버지 장군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외치는 장면에서 당신들의 소감은 어떤 것이었던가.
의구(依舊)한 산하를 제쳐두고 보기로 한다면 북한의 모든 것은 절대적 극복의 대상일 수 있을지언정 어떻게도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분단 반 세기,그 긴 세월동안 어찌하여 통일의 물꼬조차 트지못한 채 세계 최후의 분단 국가라는 이 치욕적 멍에를 짊어지고있는가 하는 이 땅 역대 위정자들에 대한 비판과 분노는 별개의문제다. 당신들의 눈에 돌을 떡으로 보이도록 만들고,당신들을 포악한 흉기로 키우고 있는 현실과,그 현실의 사실적 지배자인 「어른」들의 한심한 적악(積惡)에 대한 뼈시린 반성도 역시 당신들의 착각과 당신들의 폭력을 변호할 수 있는 이유가 되 지 못한다. 실로 모처럼만에 공권력으로 하여금 국민들의 동정과 지지를 받게한 당신들의 이번 시위는 결국은 통일을 오히려 방해했고,그런게 아니라 할지라도 살맛을 잃어가고 있는 국민들을 더 슬프게 했다.
당신들이 더 당당한 눈빛을 지어보일수록,당신들이 더 높은 목소리를 낼수록,당신들의 잘못은 더 확고해지기만 할 것이다.
후회는 앞당길수록 좋다.조국이니,역사니,통일이니 하는 것들을위해서가 아니라 당신들 자신의 너무 가련하지 않은 생애를 위하여.
유순하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