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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 망쳐 … 표 찍어준 호남에 배은망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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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주당의 진로를 둘러싸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DJ) 전 대통령 측의 갈등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노 전 대통령이 22일 자신이 개설한 토론사이트 ‘민주주의 2.0’에서 “호남의 단결로는 (민주당이) 영원히 집권당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데 대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24일 “배은망덕한 말씀”이라고 정면으로 치받아 파장이 일고 있다.

DJ 비서실장 출신인 박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호남 사람들이 노무현 좋아서 투표했느냐’ ‘호남 민심이 더 나빠져야 한다’는 등 유독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을 많이 했다”며 “그러면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어디 표로 당선이 됐느냐. 굉장히 불쾌하다”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작심한 듯 “민주당을 망친 분은 노 전 대통령이다. 민주당의 정책·공약·지지세력으로 당선했으면서 당을 분당시키고 자신이 받았던 지지표를 반토막 내서 한나라당에다 정권을 바쳐준 꼴 아니냐”고 공격했다. 그는 “한나라당 공천이면 무조건 당선되는 영남 의원들에게 먼저 말씀을 해야지, 표 찍어준 호남 분들에게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말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직 대통령이라고 정치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최소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말씀이 민주당 지지도에 나쁜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깊이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박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DJ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 체제 등장 이후 ‘떠나간 집토끼(호남 기반의 전통적 지지층) 다시 붙잡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으며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보다 DJ의 영향력도 커진 상황이다.

구민주계 인사들은 대체로 박 의원의 발언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당 지도부도 공식적 반응은 삼가고 있지만 속으론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장성민 전 의원은 개인 논평을 내고 “노 전 대통령이 추구하는 지역주의 타파의 본질이 추악한 영남 패권주의임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친노 그룹인 백원우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바라는 평소의 생각을 말한 것일 뿐이니 특별한 논란거리가 안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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