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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탐방 ⑪] 영화잡지 '웹진영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영화의 지평을 크게 확대시킨 영화. 한국영화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준 영화. 눈물이 계속 흘러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영화.

기형적으로 덩어리만 큰 내용 없는 쇳덩어리 영화. 화나서 씩씩거리게 만드는 영화. 감동을 강요하는 짜증나는 영화.

당신은 어느쪽의 관객이십니까? 전자의 관객이시라면 당신은 지금 즉시 익스플로러 왼쪽 상단의 '뒤로' 버튼을 클릭하십시오. 버튼을 클릭하는 순간 당신의 세계에서 웹진영화는 사라집니다. 참고 보겠다 하는 분들은 보고 나서 씩씩대지 마십시오. 당신의 씩씩거림을 들어줄 만큼 웹진영화는 심심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런 인간들도 있구나 하고 그냥 조용히 나가십시오.

후자의 관객이시라면, 여기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인간들이 더 있구나 하고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웹진영화의 여행은 다시 시작합니다. 안전벨트를 매시고, 저희와 같이 여행을 즐겨봅시다."

'영화웹진의 원조'임을 자처하는 '웹진영화(http://www.screen.co.kr)'의 35호 커버스토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대상 영화는 1000만 관객을 자랑하는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다. 겁도 없이 "모두가 알다시피 영화에 완벽주의를 기한다는 것과 영화가 완벽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aeon)"라거나 "감동은 쥐어짠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탄탄한 시나리오, 연출력, 배우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때 진정한 감동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내용 없는 껍데기만 기형적으로 큰 '태극기 휘날리며'와 외모지상천국의 누드 광풍은 이런 점에서 닮았다(cici)"고 단칼에 단죄한다.

한편으로는 "그러나 난, 당신의 옷 한 벌 대신 나와 형제들의 나이키 운동화를 사 신겨 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셨던 아버지를 부정할 수 없다. 그 사랑을 오버 액션이라고 매도할 수도 없다. (중략) 그게 그의 진실이었으니까. 그 부담되는 진실이 우리를 지탱하게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그런 부담으로 나를 인정시킨 영화였다(satin)"는 다른 시각도 동시에 보여준다.

이 정도면 '웹진영화'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만들었냐는 질문에 "우리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 영화에 대한 평가들이 부당하게 이뤄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기자나부랭이님들의 글들이 영화 홍보사의 보도 자료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게 베껴 쓴 경우를 보면 분노가 생기고, 자신도 소화해내지 못하는 개념으로 허덕이며 현학의 나래를 펼치는 평론가들의 글 장난을 볼 때면 또한 분노가 생깁니다. 또, 유행처럼 번지는 영화에 대한 천박한 대중의 기호 또한 역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누군가는 잘못되었다면, 설혹 잘못된 것이 아니더라도 잘못되었다고,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힘들고, 사실은 귀찮은 일이지만, 필요한 일은 아니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이정도면 영화마다 '세계적인 수작'이라고 치켜세우는 달콤한 영화평에 질렸을때 한 번 방문해 볼 만하다.

이처럼 '할 말은 한다'는 자신감은 '자발적인 참여자'들이 만들고, 호응하는 사람들만 읽는 순수한 형태의 비상업, 비주류잡지라는 데서 나온다. 웹진영화는 1997년 7월 창간했다. 스스로 "최초의 영화 웹진은 '플레어진'이었지만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웹진은 '웹진영화'입니다. 말하자면, 원조 영화 웹진입니다. 족발도 원조족발이 맛있고, 영화웹진도…"라고 밝힌다. 고정된 사무실도 없고 편집장도 없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며 참여하는 크루(Crew)들이 인터넷 상에서 작업에 필요한 대화와 일정을 이야기한다. 크루로 참여 의사를 밝히면 엄정한 기준에 따라 가입 여부가 결정되며 가입과 동시에 활동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분리를 위해 크루는 실명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웹진영화의 공식적인 입장은 "크루의 신상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웹진영화의 어떠한 견해들도 그가 어떤 사람이라는 이유로 더한 권위나 신뢰를 가진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보고, 하나의 의견으로써만 크루는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홈페이지에는 i., marilyn, morpheus, satin 등 4명의 크루, vanDal 등 10여명의 클랜과 20여명의 엑스크루 아이디만 공개돼 있다.

그 흔한 배너광고 하나 달고 있지 않은 비상업적인 성격탓인지 업데이트가 느린 편이다. 창간 이후 지난 3월에야 35호를 냈으니 1년에 다섯번 정도인 셈이다. 하긴 "원칙적으로, 하고 싶을때 한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니 할 말이 없다. 대신 '리뷰'와 '자유게시판' 등은 늘 글이 올라온다. 다만 많은 글을 기대하지는 말 것. 개인적으로는 '주류 언론매체들을 비판한다'는 '디버그'란이 2002년 11월 '일요일 낮 12시, TV에서 쓰레기를 치워달라(i.)'는 글을 마지막으로 썰렁하게 비어있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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