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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쓰는가정문화>6.男兒선호 언제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우리나라엔 남부끄러운 「세계 1위」가 몇몇 있다.그중 대표적인 것이 남자 어린이의 출생률이 여자 어린이의 출생률보다 현저히 높은 성비(性比)불균형 문제.94년 현재 국내 출생성비는 여아 1백명당 남아 1백16명으로 미국.일본은 말 할 것 없고중국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이다.
자연 성비가 여아 1백명당 남아 1백6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과다한 남아 출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인공적 수단들이 동원됐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용한」 날 찍어주기에서 정자분리까지 갖가지 비과학적 시술은물론 선진 의학기술을 이용한 태아 성감별과 인공유산마저 『아들만 낳는다면…』이란 한마디에 묵인되고 만다.이처럼 남아선호 사상 앞엔 도덕과 상식조차 맥을 못추는 현실이 교 육수준,사회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일반화돼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대구에 사는 주부 이민경(33)씨는 곧 세번째 아이를 가질 계획이다.두 딸이 8,3세로 어느 정도 컸으니 자기 일을 시작해보겠다던 야무진 꿈은 포기했다.『셋째도 딸이라면 아들을 낳을때까지 계속 낳으라』는 남편의 호통에 무엇이든 수단을 가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섰다.인생 전체를 아이낳기에 저당잡힐 지경에 처한 이씨는 여자로 태어난 것이 억울하기만 하단다.
맞벌이를 하는 주부 박지은(35.서울동작구사당동)씨는 두 딸을 낳고 더이상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가 시부모와 남남처럼 등을 돌린 경우.장남과 결혼해 시부모를 모시고 살던 박씨는 지난해 둘째딸을 낳은 후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시집살이에 시달리다 아예 『꼴도 보기싫다』는 야단과 함께 전셋방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유교사상에서 비롯된 우리 사회의 남아 선호는 그 뿌리가 너무나 깊다.사회구조며 생활양식이 혁명적으로 달라진 오늘날까지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잇고 제사를 맡긴다는 부계 혈연사회의 전통적 사고방식이 잔존하는게 물론 가장 큰 이유.
여기에 60년대부터 시작된 산아제한 정책은 『한둘밖에 못 낳을 자식인데 이왕이면 아들』이라는 파행적 행태를 부추긴게 사실이다. 최근엔 재산이 좀 있는 집안의 경우 『애써 모은 돈을 남(사위)한테 갖다바칠 이유 없다』는 아집에서,『남들 다 낳는아들을 나라고 못 낳겠느냐』는 중산층 주부들의 「구색 갖추기」심리까지 별별 이유들이 비정상적이기까지 한 남아선호 행태를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개개 가정이 아들을 고집해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그 아들들을 포함한 우리 후손 전체라는 엄연한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보건사회연구원 조남훈 부원장은 『여자 짝이 없는 현재의 초등학교 남학생들이 결혼적령기에 도달하는 2010년이면23% 가량이 신부감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다른 나라에서 상품처럼 신부감을 수입해와야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성범죄가 극도로 기승을 부릴 것이란 예측은 지나친 것이아니다. 그렇다면 아들과 딸이 차별없이 태어나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사회를 어떻게하면 만들 수 있을까.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곽배희 부소장은 『남아선호 의식을 암암리에조장하는 호주제도에도 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아무리 어려도 아들을 호주승계 1순위에 올려놓고 시집간 딸은 자격조차 박탈하는 현행 제도는 호주가 피승계인을 역량에 따 라 지명하거나가족 구성원들이 합의로 선출하는 이웃 중국.일본과도 큰 격차가있다는 것이다.이와 함께 여성의 사회진출을 보장하는 법제도를 정비해 궁극적으로 「차별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여성계는입을 모은다.
한편으론 법 개정에 따라 재산상속 권리가 아들.딸 모두 평등해진 현재조차 부모 봉양의 책임을 전적으로 맏아들 부부의 효심에만 기대는 풍조도 재고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얘기.고령화 사회에 걸맞은 연금.의료복지 정책을 수립해 노인문 제를 국가차원에서 떠맡는 것 역시 시급한 과제라는 제언이다.
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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