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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선구자” 자긍심 강한 보수파의 ‘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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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후 일본 재건 운동한
요시다 총리가 외조부
‘창씨개명’등 망언 잦아

 일본 자민당의 아소 다로(麻生太郞) 간사장이 4수 끝에 총리의 꿈을 이뤘다. 자민당 내 소수파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중의원 의장 파벌 소속이던 그는 최대파인 모리 요시로(森喜郞) 전 총리 파벌 소속이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현 총리에게 밀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패배한 아픔이 있다. 이번에는 모리 전 총리의 후원 덕에 벽을 넘었다. 자민당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후쿠다 총리가 전격 사임을 선언하고, 다음달 총선을 치러야 하는 위기에 처하자 모리 전 총리는 총선 승리를 위해 국민적 인기가 높은 아소 간사장을 택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승리한 그의 얼굴에는 기쁨보다 결의가 가득 차 있었다. 다음달 총선에서 패배하면 자신이 사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의 당선 첫 소감도 “이 순간부터 민주당과의 결전에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진정한 총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일본 남부 규슈(九州)지방 후쿠오카(福岡)현 이즈카(飯塚)의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다키치(太吉)는 석탄 산업에 뛰어들어 성공한 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 집안과 연을 맺었다. 아소의 외조부인 요시다는 일본이 패망한 뒤 1946~54년 총리로 재임하면서 한국전쟁 특수를 발판으로 일본을 재건시킨 인물이다. ‘미국의 방위우산 아래에서 경제발전에 전념한다’는 ‘요시다 독트린’은 일본 경제성장의 근본 철학이 됐다. 아소는 이날 당선된 뒤 “일본에는 역경을 딛고 나라를 일으킨 총리가 많았다”며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요시다의 이름을 거명했다.

그의 정치 철학은 요시다에게서 출발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요시다의 무릎 위에 놀면서 “일본은 대단한 나라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잘된다”는 외조부의 신념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이런 영향으로 아소는 ‘일본은 아시아의 선구자’라는 강한 자긍심을 갖게 됐지만, 자연스럽게 그의 정치 노선은 보수 우파가 됐다. 그의 아버지는 3선 의원이며, 그의 부인은 80~82년 총리를 지낸 스즈키 젠코(鈴木善幸)의 딸이다.

그러나 요시다의 또 다른 실용주의 노선이 아소에게 흐르고 있다는 평가다. 그가 다양하고 폭넓게 쌓은 경험과 견문도 영향을 줬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그가 2005년 외상에 취임했을 때 당초 우려와는 달리 과거사·독도 문제 등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는 등 한·일 갈등 관리를 위해 상당히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인 자격으로 했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외상이 된 뒤에는 하지 않았다. “개인 신념과 국익이 부딪칠 때는 국익을 선택한다”며 주위의 우파 정치인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민당 관계자는 “이런 절제력은 자신의 동생을 요트 사고로 잃고 자신도 산과 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키운 균형 감각에서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실물 경제에 대해서도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다. 아소 그룹에 입사한 뒤 71~73년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 주재하면서 다이아몬드 광산 등 해외 자원 개발에 전념했으며 33세에 아소 그룹 사장에 취임했다. 경제 철학도 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답게 효율을 중시한다. 그래서 작은 정부를 추구하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는 재정 확대와 감세 정책을 써야 한다고 보고 있다.

외국 문물과 문화·예술·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있다.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클레이 사격 일본 대표로 출전해 41등을 하기도 했다. 골프는 싱글 수준이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양복은 반드시 도쿄 시내 명품가인 아오야마(靑山)의 단골집 모리와키(森脇)에서 40년 넘게 맞춰 입고 있다.

서민적인 말투와 유머 섞인 독설이 국민적 인기를 끄는 배경이지만 국민에게 알기 쉽게 말하려다 과도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평가도 있다. “조선인이 스스로 원해서 창씨개명을 했다”는 등 역사 관련 망언을 여러 차례 했지만, 매년 두 차례 정도 지금까지 한국을 50회가량 방문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일 정권 강경 우파 힘 세져
동북아 외교 냉각기 우려

‘독도 영유권 주장’ 호소다
후임 자민당 간사장 내정

 보수 강경파인 아소 다로 간사장이 22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사실상 차기 총리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는 후쿠다 야스오 총리가 지난해 9월 취임한 이후 훈풍이 불던 동북아시아 외교가 다시 냉각기로 접어들 것이란 우려가 많다.

실제로 후쿠다 총리 집권 시 몸을 낮추고 있던 보수 우파들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아소 총재는 이미 자민당 간사장에 독도 영유권 주장에 앞장서 온 시마네(島根)현 출신 의원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64)를 앉히기로 했다.

호소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시절 관방장관을 맡으면서 정치 실세로 떠올랐으며 일본 정부의 영토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

외무상에는 고이즈미 정권 시절 요직을 맡았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55) 전 경제산업상이 거론되고 있다. 나카가와는 일본의 대표적 보수 우파 단체인 ‘일본회의’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등 젊은 정치인 가운데 대표적 보수 우파 인사다.

그 밖에도 아소 총재 주변에는 보수 우파 인물들이 넘쳐 흐른다. 전쟁과 군대 보유를 금지하고 있는 현행 ‘평화 헌법’의 개정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히라누마 다케오(平沼赳夫·69) 전 경제산업상도 아소 총재와 막역한 사이다. 이들이 입각할 가능성이 커 일본 정부 내에 다시 보수 우경화 바람이 거세질 전망이다. 특히 7월 새로운 중학교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넣어 마찰을 일으켰던 일본 정부는 다음달 새로운 고교 교과서 해설서에도 같은 내용을 포함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독도 문제를 둘러싼 한·일 관계는 한층 삐꺼덕거릴 것이 확실하다.

또한 아소 총재는 평화헌법에 대해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헌법 해석상 금지돼온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도 “인도양에서 미국의 함대가 테러를 당해도 자위대 함대가 반격할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며 문제를 제기해 왔다.

그러나 일 외무성 관계자는 “아소 총리가 보수 우파라고 평가받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시하고 있는 실용주의 성향도 가지고 있다”며 지나친 경계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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