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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문근영 “신윤복이 성장하면서 저도 크는 느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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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국민여동생 문근영(21)이 남장여자를 연기한다. 아니, 남자와 여자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연기한다. 이 사실만으로도 캐스팅 단계부터 화제가 됐던 드라마가 있다. 24일부터 방영되는 SBS ‘바람의 화원’이다. (주)아이에스플러스코프와 드라마하우스가 공동제작하는 ‘바람의 화원’은 조선 정조 때 풍속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단원 김홍도(1745∼?)와 혜원 신윤복(1758∼?)의 이야기다. 신윤복이 원래 여자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살해당한 후 남자로 살게 됐고, 훗날 스승이자 동료인 김홍도와 사랑에 빠진다는 파격적인 설정이다. 두 사람이 동시대에 활동했고, 같은 주제로 각기 그린 그림이 많다는 점 등에 착안해 미스터리와 멜로를 골고루 섞은 작품이다.

신윤복 역을 맡은 문근영은 재기발랄한 그림 천재와, 김홍도(박신양)와의 운명적 만남으로 첫사랑에 눈뜬 여인을 보여준다.

2004년 영화 ‘어린 신부’의 성공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무공해 여동생 이미지를 넘어설지에 대해 쏠린 호기심 어린 시선이 만만치 않다. 드라마 예고편 공개 후 나온 “가체를 올리고 여자 한복을 입으니 좀 어색하다”는 반응이 여동생 이미지의 공고함을 실감케 한다. 문근영에게도 여동생을 벗어나 여인으로 성큼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그동안 일종의 강박이었던 듯 싶다. 그 강박은, 많이 옅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현재진행형이다.

17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국민여동생이라는 호칭이 싫다”고 잘라 말한 것이 한 증거다. "여인의 모습이 잘 어울릴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참 서운하다”고도 했다. 19일 경기도 남양주종합촬영소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가 원작보다 훨씬 밝고 경쾌해진 데 대해 처음엔 불만도 있었다”고 말했다.

천재 화가 신윤복 역으로 TV에서는 첫 성인 연기를 선보일 문근영. 평소 고전문학과 동양철학을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이상적이고 고차원적인 한국화의 세계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나무액터스 제공]


“사실 제가 이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원작소설의 잔잔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대본을 받아보니 신윤복 캐릭터가 너무 생동감 넘치고 살아 있는 것 같아 좀 걱정이 됐어요. 제작회의 할 때 ‘초반부터 이러면 안 된다’ 반대도 많이 했어요. 기존의 어린아이 이미지를 바꿔보고자 했던 조급함이 제 마음 속에 있었던 거죠. 지금은 많이 편해졌어요. 활기차고 경쾌하고, 보는 사람이 기분 좋아지는 느낌. 그게 제 장점인데 그걸 너무 짐스럽게 생각하면 내가 신윤복이라는 캐릭터 안에서 자유롭게 놀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배우한테 그 배우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매력을 버리고 연기만 해라, 이럴 순 없는 거잖아요.”

공교롭게도 이번 역할은 문근영의 ‘성장’이라는 당면 과제와 상당 부분 통한다.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의 성장 드라마라고 해도 틀리지 않아요. 철없던 꼬맹이가 그림에 대해 알아가면서 화원으로서 성숙해져요. 한편 김홍도라는 남자를 만나 왜 내가 남자로 살까 고민하면서 여자로서의 열망과 사랑의 아픔을 느끼게 되지요. 드라마를 통해 신윤복과 제가 함께 커나가는 거죠.”

처음에는 “남자처럼 해야지”라고 되뇌었지만, 지금은 그냥 “나는 남자야”라고 생각하게 됐다. “남장으로 촬영장을 돌아다니다 화장실을 갈 때면, 신윤복도 저잣거리에서 형들과 어울릴 때는 모르다 이렇게 화장실 갈 때는 ‘아, 내가 여자구나’라고 생각했겠지 느껴요.”

이정명 원작소설을 접한 건 지난해 학교(성균관대 국문과)에서 ‘고전소설론’수업을 듣던 무렵이었다. “교수님이 고전소설을 현대적 관점으로 해석하는 방법, 현대인 입맛에 맞게 재구성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라고 하셨어요. 팩션을 찾아 읽었죠. 김탁환 작가의 『방각본 살인사건』『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같은 책에 빠졌었어요. 그때 주위에서 ‘네가 요즘 읽는 책과 비슷한 장르’라면서 『바람의 화원』을 권해줬어요. 드라마로 만든다기에 더욱 관심이 갔죠.”

2005년 영화 ‘댄서의 순정’때 발톱이 여러 개 빠질 정도로 춤 연습을 열심히 했던 그는 요즘은 붓글씨 연습에 여념 없다. 2개월간 동양화와 서예의 기본기를 배운 것 외에도 매일 일과가 끝나면 집에 갖춰놓은 문방사우로 선 긋기 연습을 한다.

“처음에는 신윤복 그림을 책에서 복사해 그 위에 화선지를 대고 베껴 그렸어요. 그러다 최근엔 필선을 잘 가다듬으려 선 긋기를 시작했죠. 아주 가까이서 찍는 장면 아니면 손 대역도 쓰지 않는답니다.”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신윤복의 ‘미인도’는 물론 ‘월하정인(月下情人)’의 비밀스러운 아름다움에 눈뜨게 됐다며 “제가 문(moon·달)근영이잖아요”하며 살짝 웃는 문근영. 아직 경험한 것보다 경험할 것이 많은 그에게 그 누구도 조바심을 낼 이유도, 필요도 없어보였다. 

남양주=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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