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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체험>'아트 앳 홈展' 감상記-건축가 한재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화랑을 열고 들어서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될까.
아마 대부분 하얀 벽면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애쓰는 그림이나 조각을 보게 되려니 하고 생각할것이다.이런 기대와 달리 전시벽면을 걷어내고 벽체의 앙상한 갈빗대를 그대로 다 드러낸 전시장에 선다면 관람객 들은 당혹감을느낄 것이다.전시 배경인 전시벽을 헐어낸다는 것은 바로 작품 스스로 의지해야 할 언덕을 없애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시공간 속에 또다른 작은 전시장을 만든 「아트 앳 홈(Art at Home)」전은 전시공간과 작품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은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뭔가 틀을 벗어나자는 이색적인 시도가 갤러리서미에서 벌어지고 있 다.
입구에 서서 어리둥절해 있는 관람객에게 화랑 직원이 건네준 것은 전시장의 평면도였다.침실과 화장실.거실.부엌.아이들 방.
서재등 마치 집 한채를 인테리어 해놓은 것같은 공간 속에 전시된 작품을 따라가면 이 전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출발선이 되는 지하 전시장을 살펴보면 한눈에 거실과 부엌.식당이 눈에 띈다.그리고 반층 아래에 꾸며져 있는 침실은 은은한촛불로 그곳의 장소성을 드러낸다.침실안에서 타오르는 윤동구의 금박입힌 두개의 초는 마치 타오르는 사랑의 불꽃 처럼 침실의 의미를 보여준다.한편으로는 시간이 흐르면 스러져갈 수밖에 없는인간의 한계적 상황을 말해주는듯하다.
그와 대조적으로 화려한 네온사인 뒤로 어두운 침실에 누워 TV를 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그린 로버트 야버의 그림은 다중화면처럼 한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옆에는 화장실이 있다.화장실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생활을 담은 김해민의 비디오 작품과 그 옆에 가운을 입고 마치 인간의모습으로 서 있는 강아지의 윌리엄 웨그먼 사진작품은 매우 은유적 대비를 이루는 상황설정이다.
계단을 올라와 1층 전시장을 둘러보면 서재에 이어 아이들 방이 나타난다.돌아가는 입구에 갑자기 나타나는 로리 시먼즈의 인형이 관객을 응시하고 있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바람에 전시공간에 자그마한 파문이 인다.
아이들 방에 설치된 백남준의 로봇 작품과 사람의 손이 닿는대로 소리를 내는 케네스 리나르도의 작품,벽과 천장에 설치된 우주를 떠다니는 운석의 무리(홍순명 작)….이것들은 모두 희망과환희,그리고 신비를 통해 미래의 삶을 생각케 한 다.
반면 그 안에는 사회 고발도 있다.바로 그것은 아이들 방 오른쪽 모서리에 대각선으로 설치된 마이크 켈리와 폴 매카티의 비디오 작품인데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충격적인 폭력을 담고 있어 요즘 세태를 떠올리게 한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던가,인생이 연극이라고….생활을 주제로 만들어진 건축공간을 배경으로 작가들의 관념을 끌어들여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한 이번 전시는 전시공간과 작품을 하나로 엮어낸 볼거리있는 이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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