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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장환 기자의 5박6일 평양방문기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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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평양의 건물들

저의 장모님이 평양 출신입니다. 이번에 제가 평양 간다니까 감회가 있으실 만도 한데 "예전 모습은 하나도 없을 텐데 뭘" 하시더군요. 역시 그랬습니다. 평양에서 예전 모습은 보통문과 모란봉, 을밀대 정도인 것 같습니다. 대규모 빌딩과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옥류관에서 바라다 본 동평양의 아파트들



아파트는 대부분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 건설됐다는데 새 아파트임에도 불구하고 페인트를 칠하지 않아 매우 우중충합니다. 그러나 외양은 상당히 예술적입니다. 적어도 우리 아파트처럼 획일적인 직사각형이 아닙니다. 원통형, 타원형, Y자형, 웨이브형 등 매우 다양합니다. 특이한 것은 옆으로 매우 길게 건설된 아파트들입니다. 한국에서는 3개 동 정도의 규모가 하나로 이어있습니다. 페인트 사정이 좋아지면 건물들이 매우 밝아지고 좋아질 것 같습니다. 이미 남북 합작으로 페인트 공장을 세우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쪽에서는 페인트산업이 공해산업으로 천덕꾸러기가 됐지만 북한에서는 수요가 무궁무진합니다. 아마 대박이 터질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완공이 되고 있지 않는 류경호텔


평양 시내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건물이 류경빌딩(예로부터 보통강가에 버드나무가 많이 있고, 호텔로 사용하려고 해서 류경호텔이라고도 부르죠)입니다. 1백 층이 넘는 고층으로 피라미드형으로 쌓아올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합니다. 평양의 자랑거리로 삼으려고 했던 이 건물은 지금 공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꼭대기 층까지 골조는 다 올렸는데 더 이상 진전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문제는 '돈이 없어서'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곧 지어야지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지어놓고 보니 당초 설계 때 생각과 달리 상층부가 바람에 많이 흔들린다는 것이죠. 정 기자는 "아마 해체해야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류경빌딩 바로 옆에 '류경 정주영 체육관'이 있습니다. 현대가 돈을 지원해 완공한 체육관으로 지난 6일 개관식을 갖고 통일농구를 한 곳입니다.



10월 1일 방문한 개선문


7. 묘향산과 동명왕릉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의 '김정일관' 전경.



평양 사람들이 휴가 때 자주 가는 곳이 묘향산이라고 합니다. 평양에서 약 12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데 2시간 정도 걸립니다. 물도 맑고 공기도 맑습니다. 고려 때 세워진 보현사도 있습니다. 보현사에는 해인사 목판으로 찍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해 놓았습니다.



9월 30일 방문한 묘향산 보현사. 남쪽대표단이 보현사를 둘러보기에 앞서 해설강사로부터 묘향산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우리는 묘향산을 간다고 해서 그냥 쉬러 가는 줄 알았더니 역시 아니었습니다. 가자마자 '국제 친선 전람관'을 구경해야 했습니다. 이 곳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김일성관'은 5만평방미터, '김정일관'은 2만평방미터나 됩니다.



묘향산 보현사 안에 있는 사진봉사 표지판.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이나 보현사에 참관온 주민들을 대상으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촬영 금지입니다. 입구에 카메라를 다 맡기고 덧신도 신어야 합니다. 각국에서 준 선물이 전시돼 있는데 50년 동안 받은 선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일부만 돌아가며 전시를 한다고 합니다.

선물마다 설명을 붙여놓았는데 마치 '위대한 수령님'께 바친 공물인 것처럼 설명해 놓았습니다. 스탈린, 모택동도 다 '수령님'께 선물을 올렸고, 한국의 역대 대통령인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도 다 올린 것으로 돼있습니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에 참관을 온 북한주민들이 해설강사의 안내로 이동하고 있다.


김정일관에는 남조선관도 있습니다. 남조선에서 '바친' 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이지요. 재미있는 게 많았습니다.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준 다이너스티 승용차(부분적으로 금 도금된 것)는 물론이고 김우중, 이건희, 구본무 등 그룹 회장들의 선물도 전시돼 있습니다.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은 골프세트(핑)를 선물했더군요. 동아일보의 보천보 전투(김일성 주석의 대표적인 항일 전투) 기사를 금판으로 인쇄한 것도 보였습니다.

아, 이곳에서도 여전히 '위대하신 수령님' 타령이었습니다. 김일성 주석의 밀납 인형이 전시된 곳이 있는데 들어가기 전에 안내원이 "옷을 단정히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수령님을 뵙자"고 하네요. 한참 설명을 하던 안내원이 갑자기 "위대하신 수령님께 경배를 합시다"며 머리를 숙이는데 하마터면 따라서 머리를 숙일 뻔 했습니다.



평양시 력포구역에 있는 동명왕릉 뒤쪽 '대신과 장군묘역'에 자리잡고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의 묘.


평양에서 30분 거리에 동명왕릉이 있습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능이지요. 동명성왕은 바로 주몽(활쏘기의 명수)입니다. 주몽은 기원전 277년에 졸본(현 중국 요령성 환인시)에 고구려를 세웠습니다. 수도는 이후 길림성 집안시로 옮겼고, 다시 서기 425년에 평양으로 옮겼습니다. 이때 시조인 동명성왕의 능을 평양으로 옮겨왔다는 설명입니다.

1991년에 새로 조성한 능 주변은 소나무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소나무들이 놀랍게도 제주도산이라는 군요. 조선시대에 3천 그루를 옮겨왔는데 지금은 1400그루 정도 남았다고 합니다. 한 1백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고구려의 장수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묘도 있어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정말 온달의 묘인지는 '믿거나 말거나' 같습니다.

짧은 방북 기간이었지만 활에 관한 황당한 전설 두 가지를 들었습니다.
묘향산에 단군사가 있습니다. 단군이 활쏘기 훈련을 했다는 곳이죠. 단군이 얼마나 힘이 셌는지 약 1킬로미터 떨어진 천주석이라는 바위에 화살이 맞았다는 겁니다. 요까지만 했으면 그런가보다 했을 텐데 그 다음 말에 포복절도하고 말았습니다. 천주석에 맞은 화살이 다시 돌아와 단군에 발 앞에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래서 단군은 화살을 단 한 개만 갖고 활쏘기 훈련을 했다는군요.

동명왕릉에서 들은 이야기. '주몽'이라는 이름 자체가 '활 잘 쏘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안내원은 "주몽이 얼마나 활을 잘 쏘았는지 태어난 지 한달 만에 어머니가 만들어준 활로 식탁의 파리를 잡았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쏟아놓았습니다.

그냥 재미있게 읽어주십시오. 전설이라는 게 원래 좀 황당하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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