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왠지 낯선 ‘탁한 저음의 아바’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SUNDAY
메릴 스트리프가 주연한 영화 ‘맘마미아’가 국내 박스오피스를 강타하면서 ‘적역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맘마미아’는 1970년대의 명그룹 아바(ABBA)의 노래만으로 제작된 뮤지컬. 99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된 이래 세계적으로 히트했고 이번에 영화화됐다.

스트리프가 연기한 여주인공 도나는 갓 스무 살의 딸과 함께 그리스의 한 섬에서 호텔을 경영하며 살아가고 있다. 잘나가는 여성 그룹의 리더였던 도나가 ‘사고’를 쳐서 아빠도 모르는 딸을 낳은 것이 20대 초반으로 짐작되므로 도나의 극중 나이는 많아야 45세.

스트리프의 실제 나이는 59세다.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젊어 보이려는 시도를 아예 하지 않았다. 주름살과 윤기 잃은 머리칼의 ‘전통적인 어머니’상이 된 스트리프와 뮤지컬에서의 ‘여전히 젊고 아름다운’ 도나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는 관객이 상당수 있다.

물론 이런 무리를 모를 리 없는 제작진(필리다 로이드 감독은 ‘맘마미아’의 브로드웨이 공연을 맡았던 무대 연출가 출신)이 굳이 스트리프를 캐스팅한 이유를 읽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의 주요 타깃을 30대 이상 여성층으로 놓고, 가능한 한 많은 관객에게 ‘어머니’로 느껴질 수 있는 배우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 스트리프 본인이 “새로 배울 노래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할 정도로 아바와 ‘맘마미아’의 팬이라는 사실도 한몫을 했다.

스트리프의 도나 연기에 우호적인 여성 팬들 가운데도 ‘노래는 조금 아쉬웠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사실 여기엔 약간의 오해가 있다. 완벽주의자로 유명한 메릴 스트리프는 음악에 상당히 조예가 깊다. 12세 때부터 오페라 가수를 목표로 성악 트레이닝을 받았고 영화 ‘뮤직 오브 하트’에 캐스팅됐을 때는 8주 동안 하루 6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했다.

자신의 노래 실력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영화 ‘에비타’의 에바 페론 역할을 놓고 마돈나와 경합했을 때 했다는 말에서 드러난다. “내가 마돈나보다 노래 실력이 나아요. 그래도 마돈나가 그 역을 차지한다면, 그 여자 목을 찢어버리겠어요(I’ll rip her throat out).”

마지막 말은 농담이겠지만 노래 실력은 전작 영화들 속에서 충분히 입증됐다. 로버트 앨트먼의 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에서 부른 ‘마이 홈 미네소타’, ‘할리우드 스토리(Postcard from the edge)’의 엔딩 장면에서 부른 ‘아임 체킹 아웃’, 그리고 ‘죽어야 사는 여자(Death becomes her)’의 뮤지컬 신에서 ‘미(Me)’를 부르며 보여준 춤과 노래는 일품이었다.

이런 스트리프가 왜 ‘맘마미아’에서는 적역 논쟁에 시달리고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음역이다. 아바 원곡의 청정 고음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의 귀에는 스트립의 저음이 거칠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외모나 노래 실력에 대한 호오나 취향은 엇갈릴 수 있지만 연기 하나만큼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게 중론. 물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역대 최다인 16회 노미네이션과 2회 수상(‘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소피의 선택’), 여기에 89년 칸(‘이블 엔젤스’)과 2003년 베를린 영화제(‘디 아워스’) 여우주연상을 석권한 최고의 여배우에게도 천적은 있다.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4회 수상(역대 최다)한 선배 캐서린 헵번은 “(스트리프의) 연기에서 톱니바퀴 소리가 난다”는 혹평을 한 적이 있다. “너무나 기계적”이란 뜻이라나.

송원섭 기자 five@joongang.co.kr

중앙SUNDAY 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