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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창고 많은 평지 해제 1순위 될 듯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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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호 26면

서울,경기 경계 지역의 그린벨트.

1970년대 중반 경기도 화성 수리산 기슭에 천주교 측이 수녀들을 위한 수영장을 마련했다. 화성군청은 76년 12월 그곳 일대가 그린벨트로 묶이자 수영장을 메워 버렸다. 수녀들이 해변에서 수영할 수도 없으니 선처해 달라는 건설부의 진언에 박정희 대통령은 단호하게 말했다. “수녀들에게 그렇게 해 주면 스님들은 가만 있나. 종교가 어디 한두 개야.”

금단의 땅 그린벨트, 또 푼다는데

70년대 그린벨트에 얽힌 비화다. 그린벨트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성역이었다. 박 대통령이 ‘주사 노릇’을 하며 예외 없이 관리했기 때문이다. 그린벨트는 71년 7월 서울을 시작으로 77년 4월 여천에 이르기까지 8번에 걸쳐 14개 도시권역에서 ‘개발제한구역’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됐다. 단 한 번의 구역 변경 없이 99년 7월까지 유지됐다. 수도권 그린벨트는 서울시 중심부에서 반경 15㎞ 선을 따라 폭 2~10㎞의 띠 모양을 형성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그린벨트 관리 규정을 결재할 때 표지에 ‘건설부 장관이 개정할 수 있으되 개정 시에는 반드시 대통령의 결재를 득할 것’이라고 써 놓았다고 한다. 72년부터 79년까지 2500여 명의 공직자가 그린벨트 관리 잘못으로 징계를 받았다. 건물에 조금만 손을 대도 귀신처럼 알아낸 공무원들이 주인들을 닦달했다. 땅 주인들은 원통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린벨트는 ‘환경보전 정책의 백미’ ‘박 대통령의 최대 치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과도한 재산권 침해’라는 비난을 동시에 받았다.

그러나 그린벨트 성역은 10년 전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처음 뚫린 그린벨트 ‘구멍(해제 지역)’은 이명박 정부에서 수가 늘고 크기도 커질 전망이다. 국토해양부는 19일 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추가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비닐하우스나 축사가 들어서 이미 그린벨트가 아닌 ‘그레이(gray) 벨트’로 바뀐 땅에 집을 짓겠다는 얘기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조차 18일 “그린벨트는 성역일 수 없다”고 기록에 남을 발언을 했다.

환경단체·지자체 반발이 변수
정부는 2018년까지 40만 가구를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 조정 가능지, 산지·구릉지 등 100㎢(약 3025만 평)에 건설하겠다고 19일 발표했다. 이를 위해 환경적으로 보전 가치가 낮은 지역을 중심으로 그린벨트를 추가 해제할 예정이다. 그러나 해제 예정 지역은 공개하지 않았다. 국토부 김정렬 도시환경과장은 “창고·비닐하우스·축사가 빼곡히 들어선 평지가 상당히 많다”며 “사회적 합의만 이뤄진다면 해제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사회적 합의다. 환경단체의 반발이 예상되는 데다 서울시도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은 “추가로 그린벨트를 해제해 또 다른 주택단지를 만드는 것은 도시 미관이나 환경에 문제가 있고 주민들이 임대주택 건립에 반대하는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수도권에서 대규모 주택 건설을 추진하는 것은 대운하 사업을 염두에 둔 사전포석이란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대규모 주택 건설이 모래 등 골재 파동으로 이어지면 골재 조달을 위해 하천 정비 사업을 재개할 명분이 저절로 생긴다는 것이다.

한국의 그린벨트 제도는 영국이 1938년 이래 시행한 것을 모방했다. 영국은 도입 이래 그린벨트를 확대했다. 건강이나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주민들이 이를 원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우 점진적 산업화와 분권적 지역개발, 완만한 도시화 과정을 거치면서 대도시 외곽의 녹지에 대한 개발 압력이 낮아 그린벨트를 확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시 외곽 녹지에 대한 개발 압력이 커졌으나 강력한 국가가 대도시 주변의 녹지를 보전해 그린벨트가 장기간 존속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국처럼 주민이 원해 지정하고 확대한 것이 아니다 보니 민주화 이후 개발 논리에 밀리고 있다.

서울~일산 우선 해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이미 정해진 7대 도시권의 그린벨트 해제 총량은 342㎢(약 1억345만 평)로 수도권은 이 중 124㎢다. 수도권은 98㎢가 이미 풀리고 26㎢가 남아 있다. 현재 규정대로라면 2020년까지는 수도권 26㎢를 포함해 총 124㎢를 초과해 해제할 수는 없다. 수도권 26㎢는 동탄2 신도시보다 약간 큰 규모로 다 활용해도 13만 가구밖에 지을 수 없다. 정부는 총량 범위에서 그린벨트 해제를 앞당기고, 필요하면 해제 총량을 늘리겠다는 입장이다.

지자체는 현재 단일 ‘관리지역’을 생산·보전·계획관리지역으로 3분하는 세분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계획관리지역은 개발이 쉽게 가능한 땅이다. 한강 상수원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경기도 시흥·고양·김포 등 수도권 서·남부 지역의 계획관리지역, 수리시설이 없거나 경지 정리가 되지 않은 땅, 비닐하우스 등이 들어서 녹지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땅이 해제 우선 지역이 될 공산이 크다.

임태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11일 “가령 일산이나 분당은 개발해도 되고 그 중간은 반드시 녹지로 놔둬야 그린벨트 정신에 맞는 것이냐는 데 근본적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돈 묶일 수 있어 투자 신중해야
그린벨트는 투자 관점에서 고위험 고수익 부동산이다. 도시 근교의 노른자위이지만 개발 제한에 묶여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개발만 되면 고수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해제될 가망이 없는 땅이면 돈이 장기간 묶이게 마련이다. 해제되더라도 국민임대단지가 들어선다면 토지 보상가는 매수 가격 이하에서 정해질 수 있다.

그린벨트 내 부동산 거래는 한산한 편이다. 대부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고 부재지주의 양도세율이 60%에 달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정부가 추가 해제 방침을 밝히면서 부동산중개업소에 매수 문의가 다소 느는 추세이긴 하다.

서울 세곡동과 고양시 덕양구 일대가 신도시나 택지개발지구가 들어설 것이란 소문이 도는 대표적 지역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환금성이 떨어질 경우에 대비해 장기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발품을 팔아 지자체의 개발 계획과 실현 가능성을 꼼꼼히 살피며 ^다른 용도로 활용할 여지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린벨트에서 해제된 집단 취락지는 자연녹지로 남거나 1종 일반주거지역 등으로 용도가 바뀌며 건축물 신·증축이 자유로워진다. 지구단위계획을 세우면 대부분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바뀐다. 일부 지자체는 기반시설을 갖추기 위해 땅을 일부 내놓으라고 요구해 소유자와 마찰을 빚고 있다.

지자체에서 지구단위계획을 꼭 확인해야 한다. 해제 지역이 자연녹지로 남을 경우 건폐율(대지에서 건물 바닥 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용적률(대지에서 건물 연면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100%밖에 되지 않지만 1종 일반주거지역일 경우 건폐율 50~60%, 용적률 120~150%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같은 1종 일반주거지역이더라도 지역에 따라 건폐율과 용적률이 다소 다르다.

일부 해제 지역은 조정 가능지로 분류돼 산업단지나 국민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설 수 있다. 3만3000㎡(약 1만 평) 이하의 소규모 그린벨트 해제 지역의 경우 정부가 추가 해제를 추진할 경우 해제 지역이 주위로 확대돼 국민임대단지로 바뀔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임대주택이 들어서는 땅은 수용 이후 토지 보상이 매수 가격 이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9·19 대책은 보상가격을 산정할 때 기준 시점을 지구 지정일에서 주민 공람공고일로 앞당겼다. 또 감정평가 때 소유자 추천제를 배제해 땅 소유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없게 했다.

그린벨트 해제 지역이나 해제 가능성이 큰 땅이라고 무조건 투자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보전 가치가 높은 곳은 보존녹지 혹은 자연녹지로 묶인다. 경사도가 15도 이상일 경우 개발행위가 허용되지 않는다.아직까지 해제되지 않은 그린벨트는 각종 루머의 진위를 가려줄 정보가 없다면 쳐다보지 않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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