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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이덕무"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허균"숨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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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남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자기 집을 망치고,여자를 가르치지 않으면 남의 집을 망친다.그러므로 미리 가르치지 않는 것은 부모의 죄다.』 교육의 중요성을 이처럼 재미있고 압축적으로 표현한 글도 접하기 어려울 것이다.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덕무의『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담긴「사소절(士小節)」을 중견 소설가김성동씨가 발췌해 풀어 쓴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의 한 대 목이다.모처럼 우리 조상의 여유와 멋과 지혜를 느끼게 하는 책이어서 반갑다.
이 책과 함께 소설가 김원우씨가 허균의 시문집 『성소복부고(惺所覆부藁)』의 부록으로 실린「한정록(閑情錄)」을 풀어 쓴 『숨어 사는 즐거움』도 독자들을 찾았다.두권 모두 솔출판사에서 나왔다.현대인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현대적 감각을 살리면서도 한자어의 질박한 맛도 놓치지 않았다.『사람답게…』은 어린이의 예절.여성의 예절.선비의 예절등 3편으로 나눠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세세한 행위의 규범과 법도를 적은 수신서.어린이의 예절 편에서는 행동.공부.어른공 경이,여성의 예절과 선비의 예절 편에서는 성행(性行).언어.복식.행동.교육.인륜등이 다뤄지고 있다.
『글을 가르칠 때는 많이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정숙하게 익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그러므로 배우는 이의 자질을 헤아려 2백자를 배울 수 있는 자에게는 1백자만 가르쳐 항상 정신과 역량이 남아돌게 한다』『옛글을 배우되 거기에 고착 한다면 참된옛글이 아니요,고금을 참작해야 오늘날의 옛 글인 것이다』『부모에게 허물이 있을 때 그대로 보고 간하지 않거나,자식에게 과실이 있을 때 그대로 두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이는 남처럼 보아 사이를 멀게 하는 것이다』….루소의 『에밀』과는 또다른 맛을 주는 글들이다.
조선 중기『홍길동전』 저자인 허균이 선비의 도리를 적은 『숨어 사는 즐거움』은 일종의 독서일기 형태를 띠고 있다.마흔둘의나이에 병을 얻어 관직을 포기한 뒤의 심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이 책의 바탕이 된『한정록』은 허균이 휴양중 에 읽은 많은책들 중에서 진한 감동을 받은 부분을 옮기고 자신의 감상을 덧붙인 글이다.정계나 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영원히 정치인이나 관리여야만 된다는 인식이 팽배한 우리 현실에서 때와 운명을 정확히 읽어내는 옛 선비들의 맘이 돋 보인다.숨어 사는 삶의 행복,세속의 굴레를 벗고서,한가로운 삶의 길,물러남의 지혜등 숨막히게 돌아가는 현대인에게 청량제 역할을 할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때를 알고,어려움도 알고,명(命)을 알며,만족할 줄도 알고,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선비가 꼭 갖춰야 할 다섯가지 지혜다.』『자식에게 땅을 더 사줘 재물이 남아돌게 하면 자손들에게 게으름만 가르치는 꼴이 된다.어질면서 재물이 많 으면자신의 뜻을 손상하게 되고 어리석으면서 재물이 많으면 자신의 허물을 더하게 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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