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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한·중·일 정상회담 조속히 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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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천하대란의 시대에 들어선 것일까.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충격이었다. 미국 정부가 AIG에 85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키로 함으로써 금융 불안의 추가 확산은 막은 것 같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세계경제가 안정될 것 같지는 않다. 아시아 각국의 주식과 외환시장이 충격에 휩싸였다. 원유 가격의 하락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급속한 변화는 여러 가지 파장을 초래한다.

위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경제 분야만이 아니다. 올여름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이후 미·러 관계는 과거와는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러시아는 군비 확장을 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와병설로 북한 정세가 매우 불투명해지고 있다. 6자회담에서 합의한 핵 불능화를 위한 조치가 백지화됐을 뿐 아니라 새 미사일 기지 건설도 추진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의 전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세는 전혀 호전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급변하고 있는 정치·경제적 상황에서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권이 확고한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10년 전 일본의 금융위기를 재현하고 있는 것 같은 미국의 금융위기에 대한 최선의 해법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다. 지금의 미 금융 당국이 1998년 일본의 금융 당국보다 단호하게 대응할 만한 능력이 있어 보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부시 행정부가 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확고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가령 금융위기를 미국이 어떻게든 극복하더라도 이 문제에 부시 행정부가 달려들어 해결하는 사이 국제정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을지 여부도 불안한 대목이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세 진전에 따라서는 북한 정세가 한순간에 격변할 가능성도 있다. 김 위원장이 앞으로도 상당한 정도의 지도력을 유지한다면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하지 않고 새 미 행정부와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또다시 위기 상황을 조성하는 전략으로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이 일본은 이달 초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의 사임 표명으로 국제정치 무대에서 일방적으로 퇴장한 것 같은 상태다. 이달 중에는 한·중·일 정상회담이 일본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후쿠다 총리의 사임 표명으로 일방적으로 연기됐다. 북한 정세의 불안 요인이 더해지고 세계경제가 대혼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이 시점에서 동아시아의 3개국 정상이 충분히 협의하고 세계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일본에서는 24일 의회에서 차기 총리가 선출될 예정이다. 새 총리는 즉시 의회를 해산하고 다음달 중 총선거를 실시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통령선거도 11월 초다. 세계경제를 이끄는 두 나라가 세계적인 문제를 소홀히 한 채 선거에 매달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물론 세계적인 난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이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직면하는 난제에 대해 후보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유권자들이 실시간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새 대통령과 새 총리에 누가 적합한지를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건설적인 선거캠페인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현직 대통령이나 총리가 필요한 정책을 착실히 시행하고 돌발적 위기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나 차기 일본 총리가 선거 중에도 경제정책과 외교정책은 책임감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기된 한·중·일 정상회담은 선거 기간에라도 어떻게든 빨리 개최할 필요가 있다. 세계경제 안정을 위해서도 그렇다. 3국 정상이 우호적, 더 나아가 건설적으로 국제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불안감을 더해가는 북한 정세를 평화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다나카 아키히코 도쿄대 교수
정리=박소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