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地圖>문학 21.'문학과 지성'의 스테디셀러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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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베스트 셀러가 일정 기간 집중적으로 판매되고 사라지는 것이라면 스테디 셀러는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판매된다.
말하자면 베스트 셀러는 공간성이 강하고 스테디 셀러는 시간성이 강하다.
공간성이 강한 책은 그 당시의 사건이나 관심,유행이나 초점등책 외부의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
그러나 시간성이 강한 책은 외부적 요인보다 책 그 자체의 내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문학과지성사(이하 문지)는 신문에「가요톱10」처럼 뽑혀 소개되는 베스트 셀러 목록에는 잘 오르지 않지만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출판사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광장』과『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근 20여년동안 1백쇄를 출간하게 돼 그것을 기념하는 자리가 있었다.
물론 그 자리는 그토록 훌륭한 작품을 쓴 두 작가를 축하하는자리였지만 거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은 그 작가들의 배후에 있는문지라는 출판사의 고집(?)을 새삼 이야기의 화제로 삼는 사람이 많았다.
비록 1백쇄까지는 아니더라도 문지에는 그러한 스테디 셀러가 상당히 많다.
『당신들의 천국』『비명을 찾아서』『마당 깊은 집』『변경』『관촌수필』『풍금이 있던 자리』등의 소설과『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나는 별아저씨』『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뒹구는돌은 언제 잠 깨는가』『입 속의 검은 잎』등의 시집,그리고 그외 이론서등 전체 8백50여종의 책중에서 4분의1 가량의 책들이 판매 부수는 많지 않아도 일정량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팔리고있다. 문지에 스테디 셀러가 많은 것은 무엇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좋은 책을 내겠다는 「스테디」한 기획태도에 있다.
출판사는 경영일변도의 여타 기업들과는 달리 경영과 편집기획의적절한 조화가 회사의 성격과 승패를 좌우한다.
문지는 창사 당시부터 경영우선으로 편집기획이 침해당하는 일을방지하기 위해 편집 동인들의 만장일치로 책의 출간을 결정하는 편집 기획회의를 두고 이를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이러한 태도에 몇몇 부정적인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75년이후 20여년동안 일관된 편집태도로 뛰어난 작가들을 발굴하고 참신한 기획으로 시대상황에 전위적으로 대응해왔다.
또한 이 기획회의 자체를 출판사의 책 기획 자체로만 축소시키지 않기 위해 편집 동인들이 꼼꼼한 자료찾기와 광범한 독서,문화 전반에 대한 적극적인 발언등을 통해 우리 문화일선에서 능동적으로 일해옴으로써 문지를 중심으로 하나의 작은 지식흐름을 형성하게 되었다.
문지의 책들이 시간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살아있게 된 것은 이러한 모든 움직임이 그동안 내.외부로 축적된 결과다.
채호기 문학과지성사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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