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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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동상전(東床廛)에 들어갔나?』라는 속담이 있다.
옛 서울의 종로 종각 뒤에서 잡살뱅이 물건을 팔던 가게가 「동상전」이다.요즘의 잡화상 같은 점방이다.
목근(木根)은 여기서 팔았다.
이것을 사러 동상전에 들어간 아낙네들은 차마 물건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한채 그저 웃기만 했다.그 웃음새로 눈치챈 가게주인은 목근을 무명천으로 도르르 감아 얼른 넘겨주곤 했다 한다.
그래서 할말을 하지 않고 웃기만 하는 사람더러 『 동상전에 들어갔나?』라고 하는 것이다.
나무를 깎은 이 양물(陽物)의 예대로의 우리말은 「갖」.손으로 갖고 쓰는,또는 늘 갖고 있는 남근이라 해서 그렇게 불렸다한다. 어느 쪽이든 실감나는 낱말 지음새가 아닌가.과부란 「양물을 갖고 있지 않는 여인」을 말한다.따라서 양물을 항시 가지고 다니는 남자의 표적이 되기 쉽다.수월히 범해도 무방하리라는만만한 생각 탓이리라.
깎아 다듬은 옥돌처럼 윤기 도는 살결을 지닌 젊은 과수 을희는 많은 남자들의 「눈독」 대상이 되었다.여학생 제복같이 수수한 감색(紺色) 스커트와 하얀 블라우스의 단벌차림은 그녀의 알찬 몸매를 오히려 더욱 섹시하게 돋보여 주었다.
「무주공산(無主空山)」을 넘보는 숱한 남자의 눈이 부담스러웠고 공방살이도 고통스러웠으나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을희를 막막하게 했다.
아르바이트나 매한가지인 미군부대 타이피스트 봉급 가지고는 어린 맥의 분유와 을희 자신의 끼니 대기가 고작이었다.
전쟁통에 친정 아버지.오빠도 돌아가 대가 가문도 볼나위없이 망했다.누구 하나 의지할 사람도 없었다.
실팍한 생활력을 지닌 김사장의 청혼을 받아들인 것은 가난에서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몸부림과 같았다.맥을 자기 아들처럼 소중히 키우겠다는 말도 믿음직했다.
동래(東萊) 온천장의 한 여관 회의장을 세내어 결혼식을 딱 벌어지게 차렸다.식후의 피로연은 떼지어 온 미군 장병을 위한 댄스파티를 겸했다.
셋방살이를 면하여 단독주택으로 이사갔다.일본인 적산가옥(敵産家屋)을 차지하여 살던 미군 장교로부터 불하받은 것이다.
낡은 다타미(たたみ)방이 우중충하긴 했지만 연못이 내다보이는넓은 툇마루는 깔끔하고 시원스러웠다.
이 툇마루에 모기향을 피우게 하고 남편은 한밤에 을희를 찾았다. 잠자는 맥 말고는 집안엔 아무도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채 둘은 짐승처럼 얼렸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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