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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2.비싸고 살게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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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주말인 13일 오후.몇년전까지만 해도 외국인들로 제법 북적거렸던 서울 이태원 거리는 썰렁하기만 했다.점포마다 많아야 두세명의 외국인이 기웃거릴 뿐 빈 점포가 많았다.그나마 이들 외국인도 관광객이 아니라 주한미군등 한국 거주자가 대 부분이었다.
『5~6년전만 해도 싸고 좋은 물건이 많았어요.그러나 지금은….』 사업 관계로 10여년전부터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새딘(49.남)은 지난해 이태원에서 부인에게 사다준 꽃무늬 프린트드레스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세탁기로 빨래하던중 드레스의 물이 빠져 다른 옷까지 망쳐버렸던 것이다.『한국 옷감은 아주 좋아 10년전에도 색깔이 빠지는 일은 없었어요.그런데 지금은 중국등에서 생산된 저질 옷감으로 옷을 만들기 때문인지 질이 떨어졌어요.』 최근 내국인의 해외쇼핑이 사회문제화되고 있지만 이들을 무조건 나무랄 수도 없다.우리나라의 상품값이 품질에 비해 너무비싸기 때문이다.
『지난해 겨울 파리 라파예트백화점에서 4만1천원 주고 산 핸드백과 똑같은 것이 여기에서는 7만5천원이나 해요.』 이태원 N상가의 가방가게에서 만난 韓모(32.서울동작구사당동)씨는 『이태원에는 파리의 유명백화점에 있는 핸드백 디자인을 그대로 모방한 물건이 많지만 가격은 오히려 파리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여행객들은 여행지에서 색다른 것을 사고 싶어한다.파리에서는 화장품류,이탈리아에서는 신발.핸드백등 토털 패션제품,인도네시아에서는 바틱이라는 식으로 어느 나라에서는 어떤 물건을 사야 하는지에 대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한국을 방문하 는 외국인들이 「서울에 가면 꼭 사와야지」하고 생각하는 상품은 무엇일까.
이태원에서 만난 터키.독일.스위스등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은 한결같이 『글쎄…』라고 고개를 갸웃했다.일부는 『과거에는 루이비통이나 구치등의 모조품이 좋다고 했으나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대답했다.
미국인 관광객 토핑(37.남)은 『맞춤양복』이라고 대답했다.
예전에 한국을 다녀온 친구가 권해준 품목이라는 것이다.한국의 맞춤양복은 미국.유럽등의 남자 관광객들에게 한때 인기를 끌어 한국의 대표적 고가 관광상품으로 떠오를 뻔했던 품 목이다.기능올림픽 양복부문 12연패가 말해주듯 솜씨는 세계에서 최고수준이면서도 값이 싸 매력적인 상품이었다.
그러나 반도조선아케이드등 유명 맞춤양복점가 상인들은 『이제는한물 갔다』고 고개를 젓는다.80년대 호텔 지하아케이드의 최고급 맞춤양복 한벌이 4백~7백달러 수준일 때는 한 가게에 하루5~6명의 외국 관광객이 찾았다.그러나 1천달 러 이상으로 오르면서 손님이 사라졌다.
***“모든게 비싼 나라” 도자기.대나무공예품등을 파는 남대문시장 D동에서 지난 12일 낮 외국관광객을 몇명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을 둘러보던 엘리 로렌(28.여.영국)은 『한시간정도 구경했지만 살 것이 없다』고 말했다.로렌은 대바구니를 들어보여주며 『이곳에는 거의 전부가 이렇게 거친 중국제품뿐』이라며발길을 돌렸다.
터키인 관광객 미타트(35.남)는 『한국은 모든게 너무나 비싼 나라』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하루 8만원을 주고 2급 관광호텔에 있는데 시트에서 냄새가 나고 샤워도중 갑자기 찬물이 쏟아지는등 형편없다』고 불만을 늘어놓았다.이 돈이면 터키에서는 최고급 호텔에도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는 하셀 스트롬(34.독일)은 『한국은 고급손님에게만 신경쓰는 나라』라고 말한다.부유한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비싼 특급호텔은 많은데 싸고 깨끗한 중간급 호텔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급은 하루 20만원 카렌 피츠워즈(24.여.캐나다)는『영국의 B&B(Bed & Breakfast)라는 숙박시설은 하룻밤 2만원정도에 영국식 아침식사를 주는데 깨끗하고 아담해 좋다』며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종류의 관광객 숙소가 있는데한국에만 없 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빈약한 숙소사정 때문에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는 2,3급 숙소를 찾는 관광객들도 한국에서는 특급호텔로 몰릴 수밖에없다.한국의 특급호텔 객실요금은 하루 평균 20만원수준.이는 싱가포르.홍콩에 비해 1.5~2배까지 비싸고,일 본의 90%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한국에 3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 마크 신더(40.남)는 『한국인들은 일본보다 물가가 싸다는등 모든 것을 일본과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며 『그러나 우리가 한국에서 기대하는 상품의 질.
가격등은 홍콩이나 대만.싱가포르 수준』이라고 꼬집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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