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점 만점에 평균 2.8점. 이번 추석 연휴 기간 지역구에 내려간 여섯 명의 여야 의원(한 명은 원외)이 전하는 지역의 체감경기지수다. 한마디로 죽을 지경이란 얘기다. 귀향 활동 중 여당 의원들은 “경제를 살리라고 대통령 뽑아 줬더니 이게 뭐냐”는 호통 때문에, 야당 의원들은 “야당도 잘한 것 없다”는 질책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성난 민심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정치권의 고민이 깊어 가고 있다.
너무 힘들다는 주민 앞에 좋아진다는 말도 못 꺼내
유승민 한나라 의원
“죽겠다. 살기 싫다.” 추석을 앞두고 가장 많이 들었던 주민들 목소리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죽겠다는데 할 말이 없었다. “너무 힘들지예. 힘들어도 추석날 하루는 좀 푹 쉬이소.” 이 말밖엔 못했다. 내년 말께 되면 경제가 좋아질 거라는 식의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았다. 경제 하나는 살리겠지 싶어 찍어준 유권자들의 인내심도 이제 바닥이 보였다.
대구·경북은 정말 어렵고 민심은 사납다. 이 정권에 전국 최고의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15년 야당 생활을 끝낸 곳이 대구·경북이다. 남들보다 더 컸던 기대만큼이나 지금은 실망과 배신감도 더 크다. “그따위밖에 못 하나. 지발 좀 똑바로 하소.” 이게 지역민심이었다. 선술집에서 소주·막걸리 얻어 마시면서 한나라당과 이 정권에 퍼붓는 거친 욕설을 들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불교 뿌리가 깊은 대구·경북은 최근의 종교사태도 민심 악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 국회의원은 욕을 먹으면서 바닥민심을 알게 된다. 정권교체만 되면 살판이라도 날 것처럼 10년간 목이 터져라 외쳤던 내 자신이 대국민 사기를 친 것 같은 죄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대선 후 지난 9개월 동안 잘못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남은 임기 동안 똑바로 잘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오각성하는 길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선 때 열광적 MB 지지
화이트칼라 반응 싸늘해
최구식 한나라 의원
추석을 맞아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많은 곳을 찾았다. 예년보다 덜 붐볐고 활기도 떨어졌다.
시장에선 이명박 정권의 성공을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대통령이나 권력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이 성공해야 자신과 가족의 살림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이해가 안 가는 새 정부의 잘못들에 대해서도 애써 이해해주려 노력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노점에서 야채를 팔고 있던 한 상인은 “앞에서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 대통령이 뭘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배울 만큼 배웠을 테니 앞으로 잘하겠지”라고 말했다. 화이트칼라의 반응에는 온도 차가 있었다. ‘잘할지 두고 보겠다’거나 ‘잘되겠나’라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들 역시 대선 때 열광적인 지지층이었다.
진주 시민들이 화가 난 결정적인 계기는 혁신도시 문제다. 매년 3000명 가까이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혁신도시에 희망을 걸고 있었는데 ‘우리 사위의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혁신도시를 무산시키려 한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서운함·불안감·짜증 등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새 정부 앞에 두 갈래 길이 있는 것 같다. 겸손하게 국민과 함께 가는 길과 오만하게 좌충우돌하는 길, 내 눈에는 앞의 길이 훨씬 넓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