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作을찾아서>시집 "세기말 블루스" 신현림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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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세상을 향해 품을 열어놓고/나는 돌아본다/뭣보다 진하게 느끼는 세기말을/도시의 우울과/슬픈 열정의 그림자들/사람의 욕망과 쓸쓸함을/솔직하게 비춰내고자/괴로음을 넘고자 내노래는 출렁인다/거침없이 일렁이며 흘러가고자//사무치는 아리랑처럼 격정의록처럼/푸근한 재즈.블루스처럼." 신현림(35)씨가 두번째 시집 "세기말 블루스"를 최근 펴냈다(창작과비평사刊).90년 "현대사학"을 통해 등단한 申씨는 94년 첫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를 펴내며 패기찬 신선한 상상력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이번 두번째 시집에서는 위 시 '나의 시'일부에서 드러나듯몸과 마음의 품을 송두리째 열어놓고 세기말적 상황을 감지,솔직하고 거침없는 언어로 담아내고 있다.대중음악이나 문화에서 추동되는 상상력,자신의 여체 자체를 시적 소재로 삼는 에로티시즘,상스런 언어를 동원해 전만없는 세계를 펼치고 있는 이 시집은 마치 90년대 세대의 시적경향을 망라해 놓은 듯하다.
"열심히 쓰면 시도 밥벌이가 될것 같아 여한없이 쓰고 있습니다.그러다보니 제 시가 모든 경향을 다 포괄해내고 있는 것 같아요.의사소통이 힘든 세상,사람이든 그리움이든 전망이든 육정이든 만나기 힘든 것들과의 진솔환 대화가 시 아니겠습니까." 申씨의 시들은 우선 쉽게 읽혀 좋다. "빈 캉통처럼 가슴은 운다 가슴은 구겨진다/유리창 너머 웃가게가 썰렁하다/누군가 자신을 사주기 기다리던/외투가 진저리치듯 펄럭인다//도시의 거리가 미끄럽다/고층건물들이 쓰러질 듯 불안해/종말의 긴 장옷,매연이 몸에 감긴다/나는 버림받았다는 기분에 휩싸여/볏짚단같이 추운 몸을 웅크렸다." '세기말 재즈' 일부다. 기다리는 마음마적 깡통과 외투로 환치시켜 놓아야만 쉽게 이해되는 물질만능의 세기말적 풍경,소외된인간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다.모든 것을 사물화시켜 놓은 냉담성 이면에는,그러나 인간적 그리움이 진저리치듯 펄럭이고있는 것이 申씨의 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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