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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포커스>거품과 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거품경제가 깨져 90년 이후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온 일본인들은 지난 5,6년간의 고통을 또 하나의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한 것에 비유한다.우선 여러 연구기관의 분석에 의하면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이 입은 경제적 손실이 2차대전때의 손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90년부터 95년 사이 일본의 토지.주식 등 자산가격 하락액은 약1천조엔(약 7천2백조원) 규모로 최근 2년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수준에 해당한다.이 때문에 일본의 금융기관들이 떠안은 부실채권은 근 1백조엔에 이르고 국 민들이 가만히 앉아 날린 알토란같은 개인자산만도 60조엔을 넘는다.국토가파괴되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았을 뿐 재산피해 규모를 보면 가위 세계대전에서 참담하게 패한 것이나 진배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후 잿더미 위에서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듯 이제 사상최대의 장기불황에서 서서히 회복해가는 단계에 들어서 있다.돌이켜보면 미국이 앞장서 때림으로써 더욱 가속화된 일본의 불황은 한국엔 적지 않은 기회였다.같은 기간 한국 이 정치적 리더십의 갈팡질팡에도 불구하고 경제성장을 계속할 수 있었던데는엔고(高)의 덕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구조 때문일까.일본의 경기회복은 한국의 경제불안과 정확히 시기를 같이 해 나타나고 있다.일본의 한국경제분석가들은 대체로 달러당 1백10엔대가 유지되는한 한국의 경제는 적어도 앞으로 2,3년간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고 보는 것 같다.때문에이들은 먹다만 위스키 반병을 놓고 벌이는 「벌써」와 「아직」의논쟁보다 그들의 경험에 비춰 불가피한 불황을 한국의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를 눈여겨 보고 있다.
사실 불황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일본인들의 대응과 지혜는 한국인들에게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만한 것들이 적지 않다.먼저 한국과 비교해 각 경제주체들이 남의 탓을 거의 하지 않는 점이두드러진 차이로 느껴진다.정책이 잘못됐기 때문이 라든지,기업과개인이 분수를 모르고 「총 투기」에 나섰다 당했다든지….한국같으면 으레 나올만한 「남의 탓」들이 신기할 정도로 잠잠했다.
거품이 급격히 곤두박질치던 91,92년 무렵의 일본 신문.잡지들을 뒤져보면 기사의 대부분이 불황은 일본 경제의 구조적인데서 온 것이므로 장기전이 불가피하니 국가.기업.가계 할 것 없이 고통을 분담해 참는 수밖에 없다는데 집약된다.
그 대책으로 정부는 어떻게 하면 규제를 완화하고 엔고를 막는대외교섭에 주력할 수 있을 것인가,원가절감을 위해 기업은 어떻게 리스트럭처링에 나설 것인가,저축률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소비를 줄이려면 개인은 어떤 생활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가 논의의 핵심이었다.
전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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