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리먼브러더스 “회사 통째로 팔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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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벼랑 끝에 몰렸다.

산업은행과의 지분 매각 협상이 깨진 데다 3분기 실적과 함께 발표한 자구계획조차 시장의 믿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리먼은 회사 전체를 파는 방안을 강구하고 나섰지만 투자자가 선뜻 나설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선 헐값으로 JP모건에 인수당한 베어스턴스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면초가 리먼=10일(현지시간) 리먼은 39억 달러 적자를 낸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리먼의 알짜 자산으로 꼽히는 자산운용 계열사 누버거버만 지분 55%를 팔고 추가 부실이 우려되는 부동산 관련 자산도 회사에서 떼내겠다는 자구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냉담했다. 이튿날 리먼의 주가는 41.8% 폭락해 4.22달러가 됐다. 장중 한때 4달러가 깨지기도 했다. 투자은행의 혹평도 이어졌다. 골드먼삭스는 “자구안에 핵심이 빠졌다”며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씨티그룹도 ‘매수’에서 ‘보유’로, 메릴린치는 ‘중립’에서 ‘의견 없음’으로 각각 하향조정했다. 리먼으로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 몰린 셈이다.

◆회사 통째로 매각 추진=그동안 리먼은 지분이나 자산 일부만 팔아 위기를 넘겨보려고 했다. 그러나 11일 자구책 발표 이후 시장 반응을 보고 나서 회사를 통째로 파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사모펀드는 규제 때문에 리먼의 주인이 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재무구조가 튼튼한 은행이 인수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선 뱅크오브아메리카(BOA)·골드먼삭스를 비롯해 BNP파리바·도이체방크·바클레이스·노무라홀딩스가 잠재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BOA를, 미국 CNBC 방송은 골드먼삭스를 유력하다고 꼽았다.

그렇지만 회사를 통째로 파는 것도 쉽지 않다. 리먼이 안고 있는 잠재 부실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인수후보 쪽에선 JP모건이 베어스턴스를 인수할 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부실채권에 보증을 서 준 것처럼 리먼도 FRB의 보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나 FRB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민간회사의 부실을 세금으로 메워줬다는 비난을 우려해서다.

◆도미노 위기=아직은 리먼의 상황이 베어스턴스만큼 심각한 상태는 아니다. FRB를 통해 급전을 끌어 쓸 수 있고 상당수 금융회사와도 정상적인 거래를 하고 있다. 골드먼삭스·모건스탠리·메릴린치·씨티그룹·JP모건체이스·BOA 등은 이번 주 리먼과 평소처럼 거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리먼의 자구책이 사실상 ‘퇴짜’ 판정을 받은 만큼 ‘흑기사’를 빨리 찾지 못하면 파국을 맞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리먼이 파산 위기에 몰리면 다른 금융회사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11일 ‘제2의 리먼’으로 메릴린치가 꼽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메릴린치 주가는 17% 하락한 19.43달러를 기록, 10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라임스앤컴퍼니 벤 월리스 애널리스트는 “투자은행 가운데 베어스턴스가 가장 취약했고, 리먼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만약 도미노현상이 일어난다면 다음은 메릴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경민·고란 기자

◆리먼브러더스는

▶ 설립:1850년. 독일에서 건너온 유대인 이민자 세 명이 설립

▶규모:미국 내 4위 투자은행

▶ 업무:주식·채권 매매, 트레이딩, 리서치·자산운용, 사모투자, 개인투자자 관리 등

▶최고경영자(CEO):리처드 풀드

▶종업원:2만8600명(2007년 사업보고서 기준)

▶ 주주 구성:기관과 뮤추얼펀드의 주식 보유 비율 79%. 악사(AXA) 9.46%, FMR(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의 자산운용 계열사) 5.69%, 클리어브리지어드바이저스 5.64%, 바클레이스 글로벌 투자그룹 3.92% 등

▶ 지점:뉴욕 본사, 런던·도쿄에 글로벌 지역 본부. 1990년 서울연락사무소, 2002년 3월 증권 지점 개소.

▶ 3분기(2008년 6∼8월) 실적:39억 달러 손실

▶시가총액:29억1000만 달러(11일 종가 기준)

▶52주 최고가:67.73달러(2007년 1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