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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깨끗하니 사람도 닭도 건강해지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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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호 20면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별이 가득 뿌려진 산기슭에 은은한 대금소리가 울려 퍼진다. 5년 전 대구에서 왔다는 귀농인 김연창(44)씨의 솜씨다. 그는 대금을 불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번잡해졌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아 초심으로 돌아온다”며 대금을 든 이유를 말했다.

경남 청미래 마을서 새 삶 꾸린 김연창씨 가족

김씨는 지리산이 지척인 경남 함양군 백전면의 생태(生態)마을 ‘청미래 마을’의 정착 1호 주민이다. 아내 김경희(43)씨, 딸 미지(14), 아들 상민(12)과 함께 2003년 2월 함양으로 들어왔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인테리어업계에 몸담았던 경력 덕분에 집(위 사진)은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 구조를 보면 영락없는 한옥이다. 통풍을 좋게 하기 위해 가운데 좁은 부엌 겸 거실을 배치한 네 칸 집이다. 한옥처럼 바닥에 구들을 깔고 황토로 벽을 쌓아 올렸다. 하지만 기둥은 나무 대신 강철 H빔을, 지붕은 단열이 뛰어난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했다.

그는 “H빔을 쓰면 내구성이 뛰어날 뿐 아니라 나무 기둥보다 공기도 짧고 비용도 싸게 먹힌다”고 말했다.김씨 부부는 ‘친환경 방사 유정란’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마을 인근에 계사(鷄舍)를 지어 닭 1000마리를 키우면서 여기서 매일 생겨나는 700~800개의 달걀을 모아 일주일에 두 차례 외지에 내다 판다. 김씨가 닭을 기르고, 달걀을 생산하는 방법은 생태마을답게 친환경적이다.

이웃 생태마을 ‘안솔기 마을’에서 배운 방법이다. 김씨는 몸을 움직일 공간도 없는 쇠창살(케이지)에 가둬 키우는 일반적인 양계장과 달리 닭을 넓은 계사에 풀어놓고 키운다. 양계장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악취는 찾아볼 수도 없다. 비결은 계사 바닥에 깔린 부엽토다. 20㎝ 두께로 깔린 부엽토 바닥이 닭의 똥·오줌을 흡수한다. 나중에 적당히 썩은 부엽토는 훌륭한 유기농 거름으로 밭에 뿌려진다. 김씨의 계사는 100평 규모의 5칸짜리다. 한 칸은 20평, 250~300마리가 자란다.

유정란을 얻기 위해 암탉과 수탉을 섞어놓았다. 계사 안에는 닭이 알을 낳는 닭장이 따로 있다. 매일 아침 김씨가 달걀을 거두기 위해 닭장을 열 때는 ‘똑똑’ 하고 노크를 한다. 김씨는 “갑자기 문을 열면 알을 낳던 닭이 놀라 건강한 달걀을 낳는 데 지장이 온다”고 설명했다. 주위 환경이 깨끗하니 닭도 건강하게 자란다. 이 덕분에 약품은 일절 쓰지 않는다. 김씨는 “시장에 나오는 일반 닭과 달걀은 항생제와 성장촉진제·착색제 등 약품을 섞은 사료를 통해 생산된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김씨 부부는 원래 잘나가던 학원강사 부부였다. 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에서 논술학원을 하면서 연 7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귀농을 결심하게 된 것은 1997년 B형 간염에 걸리면서부터다. 항암제로 쓰이는 인터페론을 1년간 맞으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버렸다.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컸다. 1년 약값만 5000만원.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을 날려버렸다. 그는 “병을 완치하고 나자 물질의 풍요보다도 건강한 육신을 가진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마침 당시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신문과 방송에 귀농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다.

“제 고향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시골마을입니다. 도시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씨는 때마침 경남 함양에 대안학교인 ‘녹색대학’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달려갔다. 인테리어 회사 경력을 살려 녹색대학 건축소위원회에서 활동했고, 이후 귀농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씨의 청미래 마을은 바로 이 녹색대학의 배후마을이다.

남편의 병치레를 지켜보던 아내 경희씨도 귀농 결정에 순순히 따라줬다. 경희씨는 “산골로 들어와 밤이 무섭다던 아이들도 튼튼하게 자라줬다”며 “대구에서는 철이 바뀔 때마다 앓던 감기가 여기선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시골에서는 아이들의 교육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이 바뀌었다”며 “아이들이 원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처럼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청미래 마을=경남 함양군 백전면에 우리나라 최초의 대안대학인 녹색대학이 들어서면서 대학 이념을 실천하기 위한 배후마을의 성격으로 만들어졌다. 면 소재지에서 3㎞ 떨어진 산기슭 3만8000평 부지가 마을 터다. 아직은 10가구만이 집을 지어놓고 있다. 이 중 김씨를 포함한 다섯 가구만이 정식으로 마을에 정착했다. 집터를 분양받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총 26가구다. 나무나 흙 등 친환경 소재로 집을 짓고,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 마을 규약이다. 입주민이 되려면 마을 주민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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