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빼닮은 ‘돌고래 영결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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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7일 오후 2시쯤 동해안의 감포(경주)·정자(울산) 중간 지점에서 10㎞쯤 떨어진 해상. 고래 탐사에 나선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의 탐구2호(70t급·책임자 안용락 박사) 앞에 검푸른 바닷물이 하얗게 변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400여 마리의 참돌고래떼가 자맥질을 하며 물을 튀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20여 마리의 무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한곳에서 떠나질 않았다. 안 박사 일행이 30여m 앞까지 다가가자 몸길이 2.5m쯤 되는 참돌고래가 허옇게 배를 뒤집은 채 꼬리지느러미만 가끔 움직일 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싶으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를 반복했다(사진①). 5마리의 동료 돌고래가 2~3마리씩 짝을 이뤄 물에 빠진 동료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리고 있었다②. 10여 마리의 다른 동료들은 주변을 선회했다.

한 시간 동안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그러더니 기진맥진하던 돌고래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숨을 거둔 듯했다③. 그러자 물 밖으로 떠밀어 올리기를 하던 동료들이 키스하듯 죽은 참돌고래의 입·목덜미·등·배와 스치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10여 분간 계속됐다. 결국 죽은 돌고래는 물속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췄지만 5마리의 동료들은 한동안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④.

고래연구소 김장근 소장은 10일 “일종의 ‘참돌고래떼의 영결식’이라고 할 수 있다”며 “추석을 맞아 귀향 길 준비에 바쁜 인간 세상에 동료·가족에 대한 사랑을 일깨울 수 있을 것 같아 연구를 거쳐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에 야생 돌고래떼의 이런 행동이 동영상과 카메라로 포착된 것은 이번이 세계 최초”라며 “조만간 고래학계에 정식으로 보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고래는 포유류여서 3분 이상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면 익사한다”며 “죽어가는 동료가 숨이 막혀 고통받지 않고 편안하게 영면할 수 있도록 동료들이 수면 밖으로 밀어 올려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돌고래는 수명이 30~50년. 평소 수백~1000여 마리씩 큰 무리 속에 20~30마리씩 작은 무리를 이뤄 행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이기원 기자, 사진=[국립수산과학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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