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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동물 교통사고 줄이기, GIS로 서식地圖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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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 ‘절벽타기의 명수’산양이 강원도 고성군 비무장지대에서 햇볕을 쬐고 있다. [중앙포토]

서울대 환경대학원 박종화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최태영씨는 지난해부터 지리산 주변 도로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다.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는 야생동물이 속출한 게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다.

최씨는 지난해 1월부터 1년간 남원과 구례를 잇는 19번 산업국도(4차로)를 대상으로 1차 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너구리가 23마리로 가장 많았고 삵 14마리, 고라니.족제비.멧토끼 등이 10마리씩으로 뒤를 이었다. 월별로는 행락객이 많은 9월(14마리)과 10월(16마리)에 몰려 있었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박종화 교수는 "야생동물의 이동습성에 대한 이해는 물론 길에서 차에 치여 죽는 것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에서는 도로에서 차에 치여 죽은 야생동물에 대한 연구가 일찌감치 시작됐다.

1995년 기준으로 미국의 경우 연간 130만 마리의 사슴이 도로에서 희생됐고 연간 200명 이상의 사람이 동물을 피하다 사망했으며, 연간 28억달러의 자동차수리비 손실이 발생한다는 보고서를 내는 등 다각적인 연구가 진행돼 왔다.

미국 도로 상에서 사슴이 자주 출현한다는 표지판을 사슴의 이동습성에 따라 세워놓은 것도 이런 연구의 결과다.

우리나라의 생태통로는 효율성 면에서 곱지않은 시각을 받아왔다. 환경부도 지난해 전국에 20억원씩을 들여 설치해 놓은 37개의 생태통로 가운데 5곳에서만 야생동물의 이동을 확인했다고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지리산 성삼재 이동통로도 지난해 너구리와 노루가 각각 1회씩, 고양이가 3회 이용했을 뿐이다. 야생으로 돌려보낸 반달곰도 이동통로 대신 도로를 5회 통과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생태통로가 과학적인 연구 없이 인간의 시각에 치우쳐 지어졌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박교수는 "환경부가 2012년까지 '한반도 생태네트워크 구축' 프로젝트에 따라 대규모로 생태통로를 조성할 계획"이라며 "기왕에 지을 것이라면 보다 과학적인 기법을 활용해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교수가 얘기하는 과학적인 기법은 지리정보를 모아 컴퓨터 등으로 분석하는 지리정보시스템( GIS)을 이용한 방식이다.

예를 들어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이 발생하면 위성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도로의 구조와 차량의 평균 속도 등으로 그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하는 것이다.

야생동물의 이동습성을 따져 차에 치이는 일이 자주 발생하는 위치를 중심으로 생태통로를 만든다면 야생동물의 교통 사망 사고를 상당부분 줄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야생동물을 종별로 구분해 표지를 달아 연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되는 난점이 있다.

박교수는 GIS를 이용해 지난해까지 설악산 국립공원을 대상으로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서식 모형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과학재단의 연구비를 받아 3년간 몰두해온 이 연구를 통해 박교수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탐방길과 차량도로, 주변에 자라나는 먹이의 종류, 지형의 경사도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산양 서식지 적합성 모형'을 만들어냈다.

이 연구도 산양의 배설물이나 영역 표시 등 산양의 흔적을 일일이 찾은 뒤 위성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시작됐다. 사람의 접근이 흔치않고 소나무숲이 가까울수록, 경사도 60도 이상의 능선을 따라 산양이 서식한다는 자료를 얻었다. 이같은 데이터를 이용해 설악산에 최대 449마리의 산양이 서식할 수 있음을 알아냈다.

박교수는 보고서를 통해 "일정 구역 내에 최소 50마리 이상은 서식해야 지속적으로 종이 유지될 수 있다"며 "64마리 정도가 서식하는 것으로 계산되는 흑선동계곡.십이선녀탕.귀때기골 지역을 산양의 특별보호구역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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