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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국악산책>2.김기수 '81530'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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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죽헌(竹軒)김기수(金琪洙.1917~86)선생은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李王職)아악부 출신이다.국립국악원 원장을 오랫동안 역임하면서 정악의 계승에 큰 공로를 세운 한편 창작국악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그는 39년 이왕직아악부 공모 작곡부문당선작인 『황화만년지곡(皇化萬年之曲)』에서부터 『승승』(82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5백여곡의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음향의 확대와 표제음악적 시도라는 말로 요약된다.방중악(房中樂)이었던 기존의 정악(正樂)은 소규모의 줄풍류 편성인 까닭에 음역이 제한됐고 음량도 작았다.그래서 이를 극장 연주로 바꿔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청중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악기편성과 음량.음역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장대한 규모의 음향효과를 통한 새로운 양식의 시도는 50년대 이후 역사적 격변기 속에서 표제음악을 통해 민족정기를고취하려는 의도에 잘 부합됐던 것으로 보인다.
서양식 오선보로 작곡돼 75년 광복30주년 기념공연으로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81530』은 「광복의 환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22종의 관.현.타악기가 어우러진 악기편성에는 그때까지 향악기.아악기.당악기라는 이름아래 함께 쓰이지 않았던 악기를 동시에 등장시키고 있다.
크게 3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1장은 광복에서 6.25의 수난까지,2장은 서울 수복에서 4.19혁명까지,3장은 5.16군사쿠데타에서 유신을 거쳐 새마을 운동으로 이어진다.
작품 곳곳에서 새로운 관현악법을 통해 모두 12개의 작은 제목에 맞는 분위기를 창출하려는 의도를 엿볼수 있다.각 악장은 음악적으로 연결되기보다 자유로운 독립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식 관현악법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무시하고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표제의 이미지를 강조하다보니 전통적 5음계안에포함된 미분음의 논리를 대거 생략했고 음양오행설의 논리로 설정된 전통적 악기편성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놓치고 있다.
서양의 관현악법과 전통음악을 무리하게 접목시키려 했기 때문이다.이같은 「원칙」을 후배 작곡가들이 성역처럼 여기는 것은 극복돼야 할 과제로 남아있다.
김미림 작곡가.서울대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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