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펄프 백지어음 곤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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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국내 유일의 펄프 제조업체인 동해펄프가 거래업체와의 백지(白紙)어음 분쟁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믿고 거래하자」는 약조로 금액이 적혀있지 않은 백지어음을 맞교환했는데,그만 상대방이 5백49억원이라는 거액을 써 결제에돌린 것.동해는 일단 이를 「위.변조된 것」으로 주장,위기를 넘겼으나 앞으로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물어내야할 판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94년1월.동해는 중소 무역업체인 TKT로부터 펄프 원료인 「우드 칩」을 10년간 공급받기로 계약했다.이 때 계약이 끝난후의 정산을 위해 백지어음을 맞교환했다. 거래가 이어지던중 지난 1월 TKT가 평소보다 3배 많은 분량의 우드 칩을 공급하고 결제를 요구한 것.동해가 계약 위반이라며 돈을 주지 않자 TKT는 지난달 15일 5백49억원을 써넣은 백지어음을 거래은행인 보람은행 서초동지점에 제시했다.
동해는 결제하지 않은채 「어음의 위.변조를 입증하면 당좌거래가 정지되지 않는다」는 어음교환소 규약에 따라 거래은행인 신한은행 소공동지점에 이 사실을 신고하는 한편 서울지검에 TKT를공갈죄및 어음위조죄로 고소함으로써 일단 당좌거래 정지의 위기를넘겼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수사나 재판이 끝날 때까지 당좌거래는 지속된다』며 『그러나 동해가 위.변조를 입증하지 못하면5백49억원을 물어줘야 한다』고 밝혔다.결국 양측은 수사 또는재판을 지켜봐야할 입장인데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논란 이 예상된다. 동해측은 『지난 94~95년에도 TKT가 원료를 제때 공급하지 않아 수급에 차질을 빚었다』며 『특히 백지어음은 계약이 끝났을 때 정산용으로 사용키로 했는데 계약기간중에 제시했으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TKT측은 『동해의 미국 현지 공장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여기서 생산되는 원료를 10년간 동해에 공급하기로 계약했다.그런데 동해가 일본 미쓰비시등의 원료를 몰래 받아쓰고 우리 원료를 거부했다.1월에 원료 공급을 늘린 것은 동해가 받지않은 작년 12월분까지 한꺼번에 선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5백49억원에 대해서도 동해측은 『터무니없는 액수』라고 잘라말했고,TKT측은 『미국 공장을 인수한후 들어간 이전.시설투자자금을 합친 것으로 명세서를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동해펄프는 93~94년 적자를 기록하다 지난해 펄프 가격 인상에 힘입어 3백53억원의 흑자를 낸 상장업체.한국제지.무림그룹.계성제지등이 주요 주주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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