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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칼럼>대통령 후보라면 이쯤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국회가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정치부재 시절에 특강(特講)정치라는게 성행인 모양이다.대권(大權)논의 자제령이 내려진 신한국당의 중진들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소리를 내놓곤 하지 못하고 대학특강이니,초청연설 같은 데서 우회적으로 대권론을 주창하고 다니기 때문이다.그런 특강에서 「한글세대 후보론」「50대주역론」「젊은 세대론」과 같은 것이 나오는가 하면 「중부권 역할론」과 같이 출신지역을 내비치며 대권도전의 뜻을 간접시사하는경우도 있다.당에서는 국회도 열리 지 못하는 판에 대권논의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계속 제동을 걸고 있긴 하지만 그야말로 대권에 관한 문제이다 보니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논의들은 모두 대통령후보의 외형적인 조건들이다.
한글세대거나 50대거나,또는 젊었거나 늙었거나 간에 그것이 대통령후보의 자질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아마도 실제로 국민들이 관심을 갖는 조건은 그런데 있지 않을 것이다.다음 대통령의 조건은 어떤 것들이어야 하는 것일까.
한 손으로 임명장을 주는 대통령은 아니어야 할 것이다.장관이나 고위공직자의 임명장을 한 손으로 주는 것이 대통령의 권위에합당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만 오히려 공직임명권의 무게를 깎아내리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부패하지 않는 대통령이어야 할 것이다.법정에 선 두 전직대통령은 재산이 수천억원씩이다.정치자금이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돈을거두고 『큰일을 하기 위해』 천억원대의 돈을 남겨두었다고 한다.퇴임후 큰 일 할 생각 말고 그런 많은 돈을 뜯어모으지 않는대통령이면 좋겠다.
어느 정도의 학식과 전문지식을 갖춘 대통령이었으면 좋을 것이다.대통령이란 자기 나라의 핵주권이 넘어가는지도 모르고 핵재처리 기술이나,우라늄 농축기술을 포기한다는 주장을 무슨 큰 선언이라도 되는줄 알고 발표해서는 곤란하다.
비전을 가진 대통령이어야 할 것이다.외국에서는 21세기를 앞두고 국가적 차원의 준비가 한창인데 우리만 뒤떨어질 순 없다.
미래학자 한번 만난다고 갑자기 21세기가 훤하게 보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전문가.학자들과도 만나서 닥쳐올 세기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그림을 그릴 수는 있어야 할 것이다.
외국을 가고 올 때 거창한 행사를 하지 않는 대통령이면 좋을것이다.공항에 주한외교사절들이 몽땅 불려나가고,장관.고위공직자.당직자들이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환송하러 나가고,환영하러 나간다.기업인들이 줄줄이 수행하고 동승기자들 수 효도 엄청나다.환영절차가 거창한 국빈(國賓)방문을 얻어내는데 힘을 쏟을 게아니라 오히려 실무방문을 더 자주 해야 할 것이다.최근의 제주한.일(韓.日)정상회담은 이런 격식들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선례를 보여 주고 있다.
영어 하나쯤은 의사소통할 정도로 말할 줄 아는 대통령이면 좋을 것이다.외무부의 가장 큰 외교과제가 회의장에 통역을 딸려 들여보내는 것이 되어서는 곤란하다.정상끼리 밀담도 나누고,중대한 거래도 하려면 단둘이 직접 토론하고 흥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정상들의 회의가 빈번해지는 시절 직접 발언에 나서 우리입장을 주장하고,싸우고,방어하는 대통령이 점점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를 아는 대통령이면 더 좋을 것이다.걸핏하면 경제인들을 집합시켜 강압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경제의 흐름을 지켜주는 것을중시하는 정책이 필요하다.수행원 몇명 데리고 외국엘 가서 우리원전(原電)기술도 팔고,건설공사도 따내고,우리 에게 밀려오는 개방압력도 막아낸다면 더 말할게 없다.다른 나라 대통령.총리들은 거의가 이제는 자국경제의 세일즈맨 대표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인 것이다.
그리고 용기와 배짱이 있는 후보였으면 더욱 좋겠다.국회꼴이 엉망이고 국회직 내정자가 입법부를 대표하기 부적절한데도 불구하고 대권의 점지를 받기 위해 엎드려 있는 것이 잘하는 정치라고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대권주자의 자격미달요건 이 아닐지 모르겠다.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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