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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검투사’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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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호 26면

-지주회사 전환이 미뤄질지 모를 정도의 아슬아슬한 계가였다. 지주사 전환에 반대하는 주주들의 주식매수 청구율이 마지노선(전환 부결 비율로 정한 15%) 직전에서 멈췄다. 소감은 어떤가.
“나도 정말 진땀이 났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 주주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사실 주식매수 청구가에 크게 못 미친 눈앞의 주가만 봐선 매수 청구를 하는 게 유리한 수순이었다. 그럼에도 주주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선택한 것은 한번 믿고 변화를 시도해 보자는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본다. 앞으로 크고 강한 금융그룹을 만들고 주식가치도 높여 주주들에게 보답하겠다.”

“신한 뺀 모든 은행이 인수 대상”

“몸집 키우기에 적극 나선다”
-국민은행 주주의 75%가 외국인이다. 이번 주식매수 청구를 앞두고 뉴욕·런던 등을 돌며 주주들을 직접 만났는데.
“지주사 전환에 대부분 긍정적이었다. 한국 금융이 제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규모가 작은 은행들이 작은 시장에서 비슷한 상품과 서비스로 경쟁하다 보니 수익성이 나빠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국민은행이 그중 매력적이긴 하지만 차별성이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다.”

-외국인 주주들의 주문은 무엇이었나.
“대형화로 경쟁력을 키우라는 게 대세였다. 증권·자산운용 등 비은행 부문을 키워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는 점에도 의견이 일치했다. 다만 해외 진출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렸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쪽이 있는 반면 아직은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았다.”

-주주들의 뜻도 그렇고, 앞으로 몸집을 키우기 위한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서야 할 것 같은데.
“그렇다. 은행을 인수하고 증권·보험사 등 비은행 부문도 M&A해야 한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아예 다른 금융지주사를 인수하는 데 우선 주력할 생각이다. 이게 어려우면 은행과 비은행의 개별 인수에 나서겠다.”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덩치를 키우려 안달인데 그렇게 호락호락 먹히겠는가.
“사실 신한금융은 우리의 능력 밖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나머지는 불가능할 게 없다. 우리금융이 민영화를 앞두고 있고, 산업은행도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민영화하기로 돼 있다. 기업은행도 마찬가지다. ”

-하나금융지주도 대상인가.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국내 금융사들은 앞으로 누가 먹고 먹힌다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수가 아니라 상생을 위한 통합(consolidation), 즉 파트너십이란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내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2% 초반으로 급속히 떨어지고 주택담보대출과 중소기업·대기업 대출까지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대형화하지 않으면 감당키 어렵다.”

하나금융도 M&A 대상임을 숨기지 않은 셈이다. 황 회장은 요즘 ‘3차 은행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부실은행 정리가 1차였다면 한일-상업, 신한-조흥 등 살아남은 은행들 간의 합병이 2차였고 이제 대형화를 위한 3차 통합이 절실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경제규모가 한국의 8배에 달하지만 대형 은행이 3개뿐인 일본, UBS와 크레디스위스 두 개로 집약된 스위스가 그가 즐겨 드는 사례들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할 기회가 다시 온다면.
“당연히 뛰어들 것이다. 나와 강정원 행장은 HSBC가 외환은행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해지는 글로벌 금융경색으로 HSBC가 외환은행 인수에 부담을 느껴 손을 뗄 가능성이 열려 있다. 상품과 서비스 면에서 외환은행 인수의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크다.”

-비은행에서는 어느 분야를 보완하는 게 가장 시급한가.
“증권과 자산운용이다. 다음이 보험이다. KB생명이 방카슈랑스 전문인데 업무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
 
“나라면 리먼 인수 안 한다”
화제를 요즘 빅 이슈로 떠오른 산업은행의 리먼 브러더스 인수 문제로 돌려 봤다.
-산업은행이 리먼 인수를 위해 민간은행들에 컨소시엄을 제안하고 있다.
“해외 투자은행(IB)을 인수하려는 방향성은 맞다. 삼성전자가 20년 전쯤 해외사업에 처음 나섰을 때 모두 부정적이었다. PC사업을 위해 외국 회사를 인수했지만 금세 말아먹기도 했다. 하지만 낭비는 아니었다. 값진 경험과 교훈을 얻었고 신경영에 접목해 오늘날의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리먼 인수도 용기를 내 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여러 걱정도 따른다.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가서 제대로 경영할 능력이 있는가, 핵심 인력을 붙잡아 둘 수 있는가라는 점이다. 더구나 나랏돈이 들어가는 딜이 아닌가.”

-KB지주는 참여할 뜻이 없는가.
“강정원 행장과 얘기해 봤는데 둘 다 아직은 역부족일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평소 공격적이란 얘길 듣고 영어로 의사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나도 솔직히 자신이 없다.”

-미국 금융산업의 미래에 대해선 어떻게 전망하나.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지만 결국 복원할 것이다. 그들의 금융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은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 내는 나라가 아닌가. 지금 미국 금융회사 주식에 투자하는 것은 괜찮은 타이밍이라고 본다. 그러나 직접 경영은 다른 문제다.”

-결국 실력 문제인 것 같다. 한국 금융의 현 수준을 어떻게 보나.
“펀드매니저나 애널리스트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 아직 세계적 수준은 아니지만 그렇게 가고 있다. 은행은 소매 쪽으론 경쟁력이 있다. 비용 관리가 약하지만 서비스나 리스크 관리, 정보기술(IT) 인프라 등은 우수하다. 씨티 등 외국계가 와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기업금융도 그런대로 잘 한다. 하지만 투자은행과 증권은 수준 차가 심각하다. 인재의 양과 질, 노하우가 부족하고 뚜렷한 강자나 비즈니스 모델도 없다. 획기적이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국내 금융시장에선 언제나 큰 쏠림 뒤엔 후유증이 따랐다. 그런 면에서 미래에셋을 걱정하는 소리가 나오는데.
“박현주 회장은 국내 자산운용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나도 쏠림이 걱정스럽긴 하다. 그러나 미래에셋이 잘 극복해 나가리라 믿는다. 미래에셋을 위해서도 앞으로 좋은 경쟁자가 많이 나와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KB지주도 자산운용업의 강자를 꼭 키워 낼 것이다.”

-국민은행의 실력은 어떤가.
“이런저런 약점이 있지만 아주 좋은 은행이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은행들을 보면 자국 시장에서의 리테일(소매금융) 기반이 매우 탄탄한데 국민이 그렇다. 지점이 많고 상품과 서비스의 질이 좋다. 최근 몇 년간 강정원 행장이 기반을 탄탄히 다져놨다.”
-국내 은행들이 너무 편하게 돈을 벌면서 외국인 주주들을 의식해 배당을 후하게 준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은행들은 지금 무한 경쟁을 하고 있다. 각종 수수료와 예대마진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 외국인 주주들에 대한 차별적 우대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은행들이 사회공헌 활동에 더 적극적일 필요는 있다고 본다. 공익 의식을 갖고 중소기업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한다.”
 
“KB지주 회장은 매우 힘들었던 결실”
황 회장에게 지난 1년 반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숨막히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금융 회장 연임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신 뒤 칩거를 거쳐 이명박 후보의 선거캠프에 들어갔다. MB 정부가 들어선 뒤엔 금융위원장 등 요직에 거론됐으나 삼성 비자금 사건 역풍 때문에 낙점을 받지 못했다.

-어떻게 정치권에까지 발을 들여놓게 됐었나.
“우리금융 회장에서 물러난 뒤 사모펀드를 계획했다. 뜻 맞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꽤 많이 진척시켰다. 그런데 MB 캠프에서 지상 발령을 냈다. 망설여졌으나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국가 발전을 위해선 보수세력의 집권이 꼭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공직에도 진출하고 싶었을 텐데.
“MB 정부에서 뭔가 기여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시청 문지기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삼성 특검 역풍이 불어닥쳤다. 미련 없이 시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대통령께 전화를 드려 ‘시장에서 살아남을 테니 부담 갖지 마시라’고 했다. 때마침 KB금융지주 회장 공모가 있어 응모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 대통령이 공직을 맡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회장 선발 면접 때도 한 사외이사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나는 시장 사람이다. 절대 공직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믿기 어렵다면 집사람에게 부동산 투기를 시켜서라도 하자를 만들겠다’고 했다.”

-자신이 사장이었던 삼성증권에 삼성 비자금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정말 몰랐나.
“이미 검찰에서도 조사가 끝난 일이다. 삼성그룹의 재무 라인이 삼성증권 지점장과 직접 거래했다고 한다. 사장은 모르는 구조였다.”

-KB지주 회장 응모가 무모한 도전이란 평가가 우세했는데, 어떻게 유력 후보였던 강정원 행장을 꺾을 수 있었나.
“사실 내 생애에서 가장 피 말리는 순간이었다. 처음 응모했을 때 선발권을 가진 사외이사 9명 중 7명이 강 행장을 지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인터뷰를 준비하고 나름의 비전으로 사외이사들을 설득해 나갔다. 무엇보다 ‘안정이냐, 변화냐’ 하는 오바마식 정공법으로 나간 게 먹혔던 것 같다.”

황 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금융산업은 리스크를 먹고산다”고 강조했다. 위험을 회피하는 금융회사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회사 제품의 원재료는 바로 리스크라고 했다. ‘검투사’라는 별명에 걸맞은 변화와 도전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과연 그가 안정적이다 못해 둔한 존재로 평가받는 KB지주 계열 금융회사들의 체질을 확 바꿔 놓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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