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8호 05면

『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를 쓴 최철주(66)씨는 36년 동안 언론인으로 일한 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탐사보도 강좌를 개설한 이 분야의 개척자다. 6년 전 그는 국립암센터에서 주관하는 호스피스 아카데미 고위과정에 등록해 반년 동안 교육을 받았다. 말기 암으로 고생하던 딸이 자기 같은 환자를 응원해달라며 권한 일이었다.

『해피…엔딩,』의 저자 최철주씨

평소 사회적으로 명망 있던 인사들이 험한 모습으로 임종하는 것을 보고 죽음을 질병이 아니라 문화적 차원에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해 오던 터라 더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다. ‘죽음 복’을 부러워하면서도 그 복을 받기 위한 준비가 너무 없는 것이 우리 삶이란 반성에서 출발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 맺은 첫 결실이 이 책이다.

원래 제목은 ‘삶이 죽음에게 묻다’였다고 들었습니다.
“기자로 일할 때 우리 사회 곳곳을 들여다보며 한국 사람들이 너무 거칠고 황량하게 ‘막’ 살고 있다는 걱정을 했었지요. 평생 그 자리에서 힘을 누리고 떵떵거릴 것처럼 얼마나 교만하고 비겁한 짓거리를 많이 하고 삽니까.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고 서면 삶을 더 알차게 이끌 수 있는데 그 원동력을 모르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죽음을 공부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져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어요. 호스피스 병동에 하루만 있어 보세요. ‘어느 날 내가 여기 온다’고 가정하면 막 살지 못합니다. 그런 생각의 씨앗 하나를 뿌리는 심정으로 국내외 현장을 취재하고 밤새워 글을 썼습니다.”

-우리 장례문화에는 후손에게 죽음을 가르치는 본보기 과정이 있었는데요.
“옛 어른들은 곡기를 끊고, 살았던 흔적을 정리하며, 아름다운 마무리를 준비하던 전통을 대물림해 주셨지요. 그런데 한국 사회가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그런 훌륭한 관습이 없어졌어요. 이제는 오래만 살려고 하지 자기를 돌아볼 줄 모릅니다. 아이들이 죽음을 보고 배울 기회가 없어요. 호스피스 활동을 하던 한 주부가 ‘강습이다 뭐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임종 맞으시는 분들과 함께한 이 일만큼 값지고 내 인생을 살찌게 한 학문은 없었다’고 고백할 때 깊이 공감했습니다.”

-죽음과 함께 사는 사회, 죽음과 격리된 사회, 두 종류의 사회가 있다고 하셨는데.
“한국 사회는 죽음을 대체로 부정하고 은폐하며 외면하지요. 안락사와 존엄사를 혼동해 쓰는 것이 한국 언론의 현실입니다. 말기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을 선택할 기회를 상실한 채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지나쳐 버립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는 죽음의 문화도 한 차원 높아지는 것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일류국가를 지향한다는 이 나라에 아직 죽음 교육이 없고 품위 있는 죽음을 유도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다니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세상에는 죽음 앞에 준비된 사람과 준비 안 된 사람, 두 부류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삶의 질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국민을 죽음 앞에 준비된 사람으로 만드는 국가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겁니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며 죽음을 앞둔 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라고 느끼셨습니까.
“말 한마디, 단어 하나입니다. 매일 살 맞대고 사는 가족에게 언제 한 번 제대로 사랑한다고 해보셨어요? 지금 당장 말해 보세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오늘 하루를 견디게 해줄 작고 예쁜 말들을 많이 해주세요. 눈을 깊이 바라보세요.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대화가 오갑니다. 당신이 이 땅에 참 괜찮은 사람으로 왔다 간다는 믿음이 가도록 눈을 열어 주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