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들이 멈춰섰다…"월 100만원 벌이도 안돼" 기사들 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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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내가 찍었어. "

"무슨 소리야, 우리 회사로 온다잖아."

지난 2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신천동 교통회관 2층 택시기사 교육장 앞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주 택시면허 필기시험(매주 금요일 시행)을 통과한 300여명이 사흘간 진행되는 소양교육 첫 수업을 마치고 나오자 택시회사 인력 담당자들이 우르르 달려가 명함을 건네며 홍보 경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D택시와 S택시 직원이 교육생 金모(36)씨를 두고 "남의 인력을 빼가려 한다"고 고함을 지르며 거칠게 다퉜다. 교통회관에서는 요즘 거의 매일 이런 장면이 되풀이된다.

실업자 수가 100만명에 육박하는 등 경기침체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지만 택시회사들은 거꾸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불황으로 수입이 급감하자 서울시내 250여개 택시회사에는 운전대를 놓는 기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업계는 올해만 4000명 이상의 기사가 그만둬 전체적으로 8000~1만명이 부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는 오는 7월부터 버스 전용 중앙차로제 등 버스체계 개편이 시행되면 타격이 더 클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 영등포시장 앞에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30여대가 길게 늘어서 있어 불황을 실감케했다.

전남연(58)씨는 "택시운전 20년 만에 이렇게 손님이 없기는 처음"이라며 "한달에 90만원 벌이밖에 안되는데 누가 운전하겠느냐"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동화빌딩 앞에서 만난 모범택시 기사 송정성(61)씨도 "외환위기(IMF) 때보다 더 어렵다. 두 시간 기다려 겨우 손님 한 분을 모셨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울의 택시는 모두 7만1000대. 이 중 개인택시는 4만7000대, 회사택시는 2만4000대다. 가장 어려움이 큰 회사택시의 경우 기사가 모자라 1만대(운휴율 40%)가 차고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이에 따라 각 회사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인력담당자들을 교통회관에 상주시키고 신규 면허 취득자를 모집하고 있다.

개인택시 면허 거래시세도 급락했다. 서울 장안평 자동차매매시장에서는 지난해 초까지 7000만원하던 면허 양도값이 5000만원대로 떨어졌다.

서울택시운송사업조합 이경복 인력관리부장은 "택시면허 응시자격을 1종 보통 면허 소지자에서 2종 보통으로 완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신종우 택시팀장은 "택시는 '1회용 자가용'인 만큼 고급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요금자율화와 면허 거래 제한, 감차(減車) 등의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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