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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규제>2.공개 복마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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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어떻게 하면 정부가 정한 물량범위내에 우리가 주간사를 맡은기업을 끼워 넣느냐가 최대의 관건입니다.』 기업공개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D증권사 인수공모부의 K씨는 이런 표현을 써가며 국내증시에 진정한 의미의 인수시장은 없다고까지 말한다.
국내 유가증권 발행시장의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K씨의 이같은 말이 결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수 있다.
공개를 원하는 기업은 주간사 증권사를 정하고 주간사 증권사는그 기업의 내재가치등을 감안한 발행가를 정해 증권감독원에 유가증권 신고서를 제출하면 공개가 되도록 돼 있는게 현행 제도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같은 형식적인 공개요건은 아 무런 의미가 없다.이같은 요건을 충족하고도 아직 공개못한 기업들이 부지기수인 까닭이다.
문제는 정부가 주식시장을 살린다는 미명하에 공개물량을 일일이챙기는데서 시작된다.게다가 최종 선발과정에선 매출액이 돌연 급감했다든지 하는 경우와 업종.공개규모등을 따지는데 여기서 탈락하는 기업도 적지않다.이 과정에서 당국의 자의성 이 또 한번 개입된다.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것은 증권사 인수.심사능력을 떨어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기업공개시 발행가는 감독당국이정한 산식에 따라 계산된 수익가치.자산가치.상대가치등을 감안해결정된다.
주간사 증권사가 기업의 성장성등을 높게 평가해 발행가를 높이려 해도 감독당국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다.물론 그렇게 산정된 발행가는 상장 이후 예상되는 시세보다 현저하게 싼 수준이다.
공개기업의 주식을 배정받으면 무조건 남는다는 인식이 확산되고공모주청약예금이라는 「기형적」인 상품이 각광받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일반인들이 주식투자의 위험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그릇된 자세는 이런 연유에서 출발했다고도 볼 수 있 다.
이렇듯 당국의 공개 사인만 떨어지면 만사형통인 상황에서 주간사 증권사들이 굳이 공개예정 기업의 자산.수익가치를 정밀심사하거나 향후 추정이익을 꼼꼼히 살피는 등 본연의 업무에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된다.
자기책임하에 공개예정 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유리한 주가에 되팔든지 투자자산으로 보유하는게 진정한 의미의 주식인수업무이나 우리나라에선 일반투자자들에게 가격이 이미 정해진 주식을 팔고 약간의 인수수수료만 챙기는 것 쯤으로 인 식될 수밖에없는 상황이다.
『물량통제를 하지않으면 공개물량이 쏟아져 주식시장이 망가진다』는 재정경제원관계자들의 우려는 가격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한다면 대부분 줄어들 것이라는게 시장관계자들의 말이다.
발행기업과 주간사 증권사가 발행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한다면 공개후 주가변화에 따른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만큼 마구잡이식 공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아무튼 정부의 물량.가격통제 속에 일부 투자자나 증권사들이 시세차익을 얻는 동 안 국내 증권사의 경쟁력은 형편없이 떨어지고 시장기능이 제대로 회복되는 일은 더욱 뒤로 미뤄질 수밖에 없다.
송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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