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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어미 모(母)」라는 한자는 젖꼭지를 단 여인의 모습을 그린상형문자(象形文字)다.
아이를 갖지 못한 육체에 말간 앵두처럼 봉곳이 솟은 젖꼭지가늘 허망하기만 했다.샤워 훈기로 뽀얗게 덮인 욕실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다보며 생명이 움트지 않는 육신이 온통 빈 동굴같다고 느끼곤 했었다.
『니 체스트 포지션이라는 걸 아십니까?』 산부인과 주치의였던고박사가 곤혹스런 표정으로 물은 적이 있다.이소장의 아내였을 때 일이다.이유없는 아리영의 불임(不姙)을 그도 초조로워하는 눈치였다.
『니 체스트? 무릎과 가슴의 그 니 체스트 말입니까?』 『네,슬흉위(膝胸位)라는 자세지요.』 자궁후굴 환자를 치료할 때 더러 갖게 하는 자세로 무릎 꿇은 채 엎드려 무릎과 가슴을 베드 위에 붙이는 모양새라는 것이다.
고박사가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어 아리영은 눈을 크게 떠서 쳐다보기만 했다.
『니 체스트 포지션으로 엎드리면 질(膣)과 자궁(子宮)이 수평으로 자리잡게 되지요.옛날 사람들은 그런 체위가 가장 수태(受胎)하기 좋은 자세라 믿었습니다.물론 의학적으로는 전혀 근거없는 말입니다만 고대 로마의 철학자 르크레티우스도 그런 체위를칭송하는 시를 썼지요.르크레티우스는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고박사는 시 구절이 적힌 쪽지를 아리영에게 건넸다.
…매력적인 열락(悅樂)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가가 매우 중요하다.동물적 방법을 따르면 분명히 임신하리라고 아내들은 생각하고 있다.그녀들은 엎드린채 허리를 높이 치켜 씨를 받아들인다…. 시 쪽지를 읽고 가슴이 찡했다.불임 주치의 이상의 따스한 보살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이런 고전적 체위를 택하면 혹시임신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의사답지 않은 회의(懷疑)가 오히려 지적(知的)인 향기를 풍겼다.
…슬흉위.
후에 나(羅)선생이 일본에서 사 보내준 옛책 『의심방(醫心方)』에도 그런 체위가 그려져 있어 놀랐다.
『현녀경(玄女經)』이라는 고대 중국의 방중술(房中術)책자를 인용한 대목으로 아홉가지 동물적 체위 중의 하나였다.호랑이의 걸음걸이에 비긴 자세다.
…호보(虎步).여인은 엎드려 허리를 높이고 얼굴을 침상에 파묻는다.남자는 그 뒤에 무릎 꿇고 앉아 여인의 배를 안고 깊이삽입한다….
그러고 보니 경주박물관의 신라토기 「토우장식장경호(土偶裝飾長頸壺)」의 목 둘레에도 그같은 체위의 남녀 토우가 붙어 있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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