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탄생뒷얘기>6.하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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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거대한 둑이 무너지는 것이 개미만한 틈에서 비롯되고 만리장성 대역사도 벽돌 한장 쌓는 일에서 시작된다던가.초등학교 6학년이던 81년 서울 석관초등학교에 부임해온 옆반 담임선생님과의 작은 만남은 이후 평범한 여자아이였던 하희라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동요작곡가이자 현재 을지초등학교 교사인 전준선씨가 그 주인공.전교사는 부임하자마자 학교합창단을 만든다.하희라는 친구 권유로 합창단에 응모했다.친구는 탈락하고 하희라가 뽑혔다.그렇게 해서 하희라는 전교사와 첫 대면을 한다.전교사의 지도로 하희라는 그해 5월 교육방송 주최 『전국어린이노래자랑』에 출전해 우수상을 수상한다.
몇달뒤 전교사는 하희라를 데리고 KBS공개홀 견학길에 나섰다.전교사는 당시 인기리에 방송되던 『TV유치원 하나 둘 셋』 담당자에게 하희라를 인사시켰고,『한번 해봐라』는 얘기 끝에 그는 KBS어린이합창단 단원이 된다.
새 악보를 받아들고 세번만에 노래를 부를 수 있어야 비로소 입단자격이 생기는 합창단의 관문을 피아노 건반 한번 안쳐본 하희라가 용케 통과한 것도 틈틈이 전교사의 지도로 음악공부를 해온 덕이 컸다.합창단 생활 3년만인 84년 대하드 라마 『탑』에 단역으로 출연한다.2명의 동료와 함께 노래부르는 소녀역이었다.단역이었지만 담당 최상현PD는 하희라를 눈여겨보았다.몇달뒤청소년문학관 『내이름은 마야』 연출을 맡은 최PD는 마야역에 과감하게 하희라를 기용했다.
정신없이 시키는대로 울고 웃고 연기했다.첫 촬영인데도 NG 한번 없이 지나갔다.후일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눈물 연기는특히 일품이란 평도 들었다.숨겨진 끼가 서서히 밖으로 꿈틀거리며 나왔다.그러던중 그에게 또 한차례의 기회가 온다.
87년 여고 3년때 대하사극 『노다지』의 「웃간네」역이 맡겨졌다.한국판 여자의 일생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그는 매맞는 신랑(김진태분)을 살려달라며 통곡하는 장면으로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깊이 새겨놓는다.「웃간네」의 어린시절 역으로 6회만 출연키로 했던 원래 계획이 바뀌고 하희라는 20회를 넘게 출연하게 됐다.
이후 『하늘아 하늘아』『드라마게임』등 드라마와 『캠퍼스연예특강』『풀잎사랑』등 영화와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출연등 바쁜 나날이 이어지며 하희라의 이미지는 잘나가는 하이틴 스타로 굳어져 갔다.그는 이 시절이 「답답했다」고 말한다.하 이틴으로는 너무 「늙었고」 성인연기에는 아직 어리다는 평 때문이었다.90년 그는 MBC-TV로 적을 옮긴다.황인뢰PD 연출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인공 영채역을 맡았다.영채역은 하희라의 연기인생에 전환점이 돼주었다.
고교생에서 시작해 두 아이의 엄마역까지 연기해낸 이 드라마에서 그토록 고민해왔던 성인연기자로의 변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무리하지 않고 극의 흐름만 따라 가면 소녀에서 성인으로의 변모가 그대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 후 『사랑이 뭐길래』『당추동 사람들』『먼동』『젊은이의 양지』등 출연 드라마마다 히트를 기록했고,간간이 올라선 연극무대에서도 사상 유례없는 관객동원을 기록하는등 하희라의 쾌속순항은 계속된다.
92년 12월31일 오전2시 하희라는 전준선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최수종-하희라 결혼」이란 기사가 이날 아침 발표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선생님만은 신문을 보고자신의 결혼소식을 알게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었 다.지금도 스승의 날과 어린이 날이면 하희라부부는 전교사댁을 찾아뵙고 꽃다발과 함께 인사를 드린다.그때마다 전교사는 하희라를 보며 『나때문에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같아 미안하다』고 되뇐다.자칫 유혹과 탈선으로 치닫기 쉬운 연 예인 생활을 어린 나이에 시작하고도 바른 처신과 행동으로 잡음하나 없이 「똑소리 나는 탤런트」 소문난 하희라.
그의 스타탄생 뒤켠에는 우연히 제자의 운명을 바꿔놓고 잘못될까 반평생을 걱정해온 한 선생님의 보살핌이 깃들어 있었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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