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고르비의 수모(受侮)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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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인물을 요구한다.지난 85년 54세의젊은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과거 소련지도자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인물이었다.그는 소련 최고지도자로선 레닌이래 처음으로 대학교육을 받은 인물 로 세련된 지성과 활동력을 갖추고 있었다.소련외교의 산 증인으로 고르바초프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안드레이 그로미코는 고르바초프를 「멋진 미소뒤에 강철이빨을 감춘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고르바초프가 권좌에 있던 6년동안 세계는 일대변화를 겪었다.
그는 변화의 중심에서 변화를 주도했으며,그 자신이 변화의 희생물이 됐다.고르바초프는 소련이 붕괴직전이며,소련을 살리기 위해새로운 혁명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그는 페레스 트로이카를 통해 소련식 국가사회주의체제를 해체해나갔다.공산당의 독점적 지위를 포기하고,소련을 법치국가로 만드는 한편 글라스노스트정책으로소련이 저지른 역사적 오류들을 청산하려고 노력했다.
밖으로는 자본주의사회를 파괴 대상이 아니라 인류적 과제를 놓고 서로 협력해야 할 파트너로 인식했다.미국과 일련의 과감한 군축협정을 성공시킨데 이어 89년 12월 냉전종식을 선언하기에이르렀다.뿐만 아니라 동유럽 주둔 소련군을 철수 시킴으로써 동유럽민주화를 가져왔으며,베를린장벽을 붕괴시켜 독일을 통일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이같은 노력의 결과 고르바초프는 타임지가 선정한 「80년대의 인물」이 됐으며,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고르바초프는 세계의 지도자가 됐지만 러시아의 지도자는되지 못했다.91년 12월 소련해체로 현실정치에서 멀어진 고르바초프는 러시아영토 밖에선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지만,러시아 국내에선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러시아인들은 그를 개 혁의 고통을 몰고온 장본인,러시아를 몰락시킨 매국노라고 비난한다.지난번 대통령선거에서 그가 기록한 1%도 안되는 득표율이 이를 증명한다.
선거후 고르바초프는 『나는 정치가며,앞으로도 정치가로 있겠다』고 말했다.그러나 그같은 호언(豪言)도 공허하게만 들린다.역사를 변화시키고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된 그지만 현재의 러시아인들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고르 바초프란 인물이 갖는 비극성(悲劇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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