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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마음에 남았던 추억 속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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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감사의 달 5월이 다가왔다. 부모님께, 선생님께, 그리고 잘 자라는 자녀에게 선물로 정을 표시하는 계절이다. 가슴 찡한 선물, 잊혀지지 않는 선물을 받은 부모.선생님.어린이의 글을 소개한다.

*** 스승의 날 막걸리 한잔, 인생 최고의 진수성찬

▶ 이상갑 경복고등학교 교장

1985년 서울 고덕지구에 새로 생긴 명일여고 교감 때 일이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퇴근 무렵이었다. 학교 현관 밖에 허름한 차림의 학부모 내외 분이 봄비를 맞으며 쌀 배달 트럭 앞에 서 있었다.

"선생님, 감사해요. 이 트럭에 타시죠."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트럭은 남한산성 입구 조그만 음식점에 도착했다. 학부모님은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막걸리를 권했다.

"과외를 못 시키는 형편이지만 선생님들 덕분에 아이가 학교를 좋아해요. 성적도 오르고, 반장도 되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우리는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다시 정겨운 트럭을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나는 이제껏 그렇게 맛있는 막걸리를 마신 기억이 없다. 막걸리 한 잔에는 학부모의 소박한 인간미와 깊은 자식애, 학교와 교사에 대한 믿음이 흘러넘쳤다. 어떤 진수성찬도 따라오지 못할 값지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 후 그 아이가 좋은 대학을 졸업해 반듯한 사회인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승의 날의 참뜻이 자꾸 퇴색하는 요즘 그 막걸리 한잔의 기억이 새롭다.

이상갑 경복고등학교 교장

*** 집안 구석에 팽개쳤던 '인라인' 엄마가 찾아줘

▶ 강지원 대전 문정초교 4학년

지난해 어린이날 부모님께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선물하셨다. 갖고 싶던 것이어서 너무 기쁘고 행복했다. 스케이트 신발을 신고 안전모와 보호대까지 차니 정말 근사했다. 금방이라도 싱싱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연습해 보니 그렇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아 울고 싶어졌고 행복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결국 엉덩방아를 찧고는 배우기를 포기했다. 나의 인라인 스케이트는 한쪽 구석에 놓인 채로 잊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집안 한 구석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가방을 발견했다. 나의 인라인 스케이트였다. 소중한 선물이 그렇게 놓여 있었다. 엄마는 "넘어지는 것을 무서워하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며 용기를 내서 연습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내가 정말 갖고 싶던 선물이니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그래서 넓은 하늘을 나는 새처럼 시원한 바람을 타고 멋지게 타고 싶다. 그러면 부모님도 박수를 쳐 주실 거야.

"용기를 내자! 난 할 수 있어." 바로 내가 내 스스로에게 준 희망의 선물이다.

강지원 대전 문정초교 4학년

*** 딸이 출간한 책 받을 때 내 교육 방식에 성취감

▶ 김경오 대한민국 항공회 총재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 잘되는 일만큼 큰 기쁨이 없을 것이다. 큰딸(이보영, EBS TV.KBS FM 영어 강사)이 1998년 '미국에서 살다 오셨습니까'라는 영어 학습 체험서를 냈다. 딸은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자마자 따끈따끈한 기운이 남아있는 책을 나에게 들고 왔다.

책 속에는 엄마가 만 두살 때부터 인형놀이를 하며 영어를 가르쳐준 사연이 구구절절이 적혀 있었다.

여류 비행사로서 국제회의에 자주 드나들던 나는 외국어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닫고 시간 나는 틈틈이 두 딸을 붙들고 영어를 가르쳤다.

그 뒤로 올해까지 딸은 30권의 영어 학습서를 냈고 그 중 많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딸은 책이 출간되면 언제나 나에게 먼저 달려와 선물했다.

보영이의 책을 보고 있노라면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발버둥치던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것 같아 가슴 뿌듯하다. 딸은 어버이날이 되면 언제나 장문의 감사편지를 써 보낸다. 하지만 나에게는 보영이의 책을 선물받는 그날 그날이 모두 부모에게 감사함을 전하는 어버이날로 여겨진다.

김경오 대한민국 항공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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