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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마을/영화관] 눈 떠보니 아무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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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년 전 저는 지방대학의 공대에 들어갔습니다. 2학기가 시작될 무렵 인문대생인 예비역을 만났지요. 새내기라 미팅 제의가 줄줄이 들어왔지만 그를 배려해 모두 다 뿌리쳤지요. 친구들이 미팅을 나간 어느 날, 그를 호출기로 불러 만나자고 했더니 약속이 있다더군요. 영화나 한 편 봤으면 했는데 말입니다. 조금 뒤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야! 네 남친이 우리 상대로 나왔어. 어떻게 된 거야? 헤어졌어?”

“뭐? 약속이 있다더니만, 이놈을….”

저는 신뢰를 저버린 그에게 실망해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마음을 달래려 혼자 쇼핑하고, 머리를 하고, 호프도 한잔 하고 심야영화를 보러 들어갔지요. 다들 쌍쌍이 왔더군요. 제일 뒷좌석 영사기 돌아가는 자리 아래에 앉았습니다. 실내가 따뜻하고 취기가 서서히 올라오니 눈이 살살 감기더군요.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한기가 들어 퍼뜩 깨보니 맙소사, 깜깜했습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40분. “오 마이 갓! 이게 뭐야?” 유일한 불빛인 비상구 녹색 표시등을 보고 더듬더듬 출입구를 찾아 나왔습니다. 상영관이 있던 3층에서 1층 현관까지는 어찌어찌 내려갔지요. 그런데 무거운 유리문과 셔터문이 잠겼더군요. 막막했습니다. 당시엔 휴대전화도 없었고 호출기만 있었는데 그 안에선 쓸모가 없었습니다. 건물 안의 어두운 사무실을 뒤져 간신히 전화를 찾았습니다.

집으로 전화했더니 저희 부모님… 서울의 친척 결혼식에 가셨으니 받을 리가 없었지요. 도둑으로 몰릴까봐 경찰은 부를 생각도 못했고요.

도리가 없더군요. 기분은 내키지 않았지만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택시 타고 단숨에 달려오더군요. 그가 연락해 경찰관 두 명과 극장 관계자가 온 뒤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남자 지금 저와 한 이불 덮고 잡니다. 그때 달려온 정성을 보고 용서해줬지요. 거짓말 안 한다는 각서를 받은 뒤로 지금까지 사랑하며 잘 살고 있답니다(그 뒤에 들은 이야기로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잠자는 저를 보지 못하고 문을 잠가버렸다더군요. 지금도 영화관에 가면 그날 밤 생각이 납니다). 김자영

(32·주부·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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