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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본받을 선배의원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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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국의 국회가 개원조차 못하고 겉돌고 있다는 소식이다.법정 개원일이었던 지난 5일 임시의장을 맡은 자민련 김허남(金許男)의원은 본회의를 개회하자마자 곧바로 산회를 선포하는 깜짝쇼를 연출했고,이에 허를 찔린 신한국당은 金의원 다음으 로 고령인 김명윤(金命潤)의원을 내세워 개원을 강행하려 했으나 야당의 육탄저지에 밀려 실패했다.
이런 희극적인 모습에 대해 이번에 처음 국회에 들어간 초선의원 상당수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의원 배지를 떼고싶다』며 실망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럼 일본 국회는 어떤가.지금으로부터 59년전인 지난 37년일본국회를 보자.
당시 30세의 나이로 최연소 중의원에 당선된 미키 다케오(三木武夫.사망)가 국회 의사당에 처음 들어가던 날 할아버지 뻘인79세의 오자키 유키오(尾崎行雄)의원은 복도에서 『미키군(君),어서오세요』라며 큰소리로 반겼다.
미키는 당시 부패정치 청산과 의회쇄신을 내걸고 당선된 정치 초년병이었다.
반면 오자키는 1890년 제1회 일본총선에서 당선된 뒤 민주주의 옹호와 반전(反戰)자세를 줄기차게 견지,63년간 연속 25회 국회의원 당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거물.
『깨끗한 정치,좋습니다.처음 세운 뜻을 끝까지 밀고 나가세요.정치가는 모름지기 그래야 합니다.』 그때 오자키는 미키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따뜻한 말을 건넸다.
그런 오자키는 53년 총선에서 95세의 나이로 첫 낙선을 하고나서는 곧바로 숨졌다.
그렇지만 그가 미키에게 남긴 『깨끗한 정치』『초지일관』이라는말은 미키로 하여금 「미스터 클린(청렴결백한 인물)」으로 불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덕분에 미키는 국회의원에 19회 연속 당선되는등 오자키 다음의 장수 국회의원 기록을 가지게 됐다.
지난 74년 총리에 오른 미키는 전직 총리이자 실세중의 실세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가 록히드 뇌물사건에 연루되자 과감히구속시켜 버렸다.
미키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그가 금권정치를 과감히타파하려한 깨끗하고 소신있는 정치가였다는 점은 모두들 인정하고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의 국회는 여전히 후진적이다.첫 등원하는 정치 초년병에게 오자키처럼 정치가의 금도(襟度)를 깨우치게 하지는 못할망정 추태.구태의 선봉에 서도록 몰아붙이는 여야선배의원이 즐비한 한국국회를 보고 오자키나 미키는 어 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이철호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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