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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러시아의 선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세기 러시아 지식인사회는 슬라브파와 서구파 둘로 나뉘었다.슬라브파는 러시아의 독자적 사회발전,즉 농촌공동체 미르를 중심으로 한 평화롭고 자치적 생활을 주장했다.반면 서구파는 국가.공동체.가족으로부터 독립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를 요구했다. 91년 12월 소련이 소멸했다.러시아는 시민사회와 시장경제를 지향하면서 유럽으로의 복귀를 희망했다.그러나 그후 나타난 현실은 고난의 연속이다.경제는 파산상태를 면치 못하고 민족갈등이 분출하고 있다.엄청난 부(富)를 이룬 소수 특권 층이 생겨난 반면 일반서민의 경제수준은 나락(奈落)에 빠져 있다.전체인구의 23%가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고 있다.또 범죄의 급증은 국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협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역사적 반동(反動)이 일어나고 있다.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라는 서구적 가치관에 대한 거부,러시아의 영광을부르짖는 정치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여기에 러시아 공산당이 앞장서고 있다.공산당은 지난해 12월 하원선거에서 원내 제1당이됐으며,개혁의 희생자들인 중.노년층과 연금생활자들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다.
소련공산당 시절 페레스트로이카에 반기(反旗)를 들었던 겐나디주가노프 공산당수는 소련붕괴는 미국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는 공산주의 이념에 러시아 민족주의를 결합한 스탈린식애국주의를 표방하며,러시아를 초강국으로 만든 소련의 영광을 재현하겠다고 다짐한다.러시아의 정치.사회조류 역시 급속히 보수화하고 있다.보리스 옐친대통령도 이같은 분위기를 의식해 적극적 개혁지지입장을 포기하고 대(對)서방 강경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오늘은 러시아 대통령선거일이다.선거는 일찍부터 옐친과 주가노프 두 후보간 백중세(伯仲勢)였다.두 사람중 누가 당선되든 앞으로 러시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이 확실하다.
러시아의 근대역사는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 사이의 상 극(相剋)이 반복돼 왔다.소련붕괴후 러시아는 스스로의 국가상(國家像)을정립하는 데 실패했다.서구복귀의 꿈이 좌절됐다고 생각되자 다시슬라브주의로 진로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러시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이번 러시아 대통령선거에서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중요한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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