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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아버지,정여사님이 「다코(たこ)」가 되신 것 같아요.실 끊어진 연….』 말하다 말고 아리영은 입을 다물었다.아버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고 굳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금 뭐라 그랬냐?』 아버지는 마른 목소리로 되물었다.
『실 끊어진 연이라니?』 『집을 나가신 것같아요.그간 약초원댁에 계셨었는데 집에 다녀온다고 나가시곤 집에도 안가시고 약초원에도 안돌아오셨다는군요.제가 일본에 가 있을 때 일이니 벌써여러날 됐나봐요.』 『그걸 이제야 얘기하냐?』 나무라듯 원망하듯한 말투였다.
『저도 어제서야 알았어요.실은요….』 마음을 다지고 정여사 어머니 얘기를 하자 짐작대로 아버지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정여사에게도 그런 징조가 보인다면 얼마나 기막혀 할까 싶어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 사실을 정여사님은 알고 계신가?』 「정여사님」이라며 애인에게 꼬박히 경칭을 붙이는 아버지를 아리영은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봤다.
『도쿄에 계시는 어머님이 정여사님께 연락하셨으면 아셨을 테지만….제가 정여사님 집과 약초원 주소랑 전화번호를 적어 드리고왔거든요.하지만 그분은 아직은 따님 찾을 때가 아니라 하셨어요.모르긴해도 연락하진 않으셨을 것같아요.』 『일본에 안가셨다면어딜 가셨을까?』 아버지도 서여사와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어머니 연락을 받고 몰래 도쿄에 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었다.
40년전에 가출한 생모(生母)가 무당이 되어 일본에 살고 있다는 말을 집안 식구 누구에게 할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어머님을 뵈러 가신 거라면 안심되지만….』 『도쿄로전화해 보는 게 어때?』 『서여사님도 그럴 의향이셨어요.』 『내일 만나뵈면 의논해 봐야겠군.』 아버지는 뭔가 계획을 세우는눈치였다.
연풍은 아늑한 산골이었다.높이 1천17의 험준한 조령(鳥嶺)에 등대고 있는 깊은 산중 마을이다.
현감등이 집무한 관청 동헌(東軒)과 마을학교였던 향교(鄕校),그리고 포도청(捕盜廳)이 예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포도청 마당은 가톨릭 「성지(聖地)」이기도 하다.조선조말,이심심산골로 피신해 온 신도들을 잡아다 처형한 화강암이 마당 한구석에 놓여 있다.둥글게 깎아 닦은 반들반들한 그 처형틀엔 신자의 목을 죄어 순교케 한 핏자국이 아직도 역 력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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