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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정치] 정치인이 체육단체장 맡는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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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은 배구를 즐긴다. 대학 시절 종종 네트를 가운데 두고 김부겸(민주당) 의원과 맞선 기억이 있다. 재정경제부 시절에도 배구 코트에 서곤 했다. 그는 주로 왼쪽 공격을 맡았다. 지난달 25일 배구협회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회장 추대위원들이었다. 임 의장에게 회장직을 제안했다. “수락만 하면 신임 회장 선출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의장의 대학 1년 후배이자 프로배구연맹 총재인 이동호 대우자판 사장도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임 의장은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의 홍준표 원내대표는 “금메달 네 개를 걸고 금의환향했다”(박희태 대표)는 덕담을 듣고 있다. 태권도협회장으로 취임한 뒤 첫 국제 행사인 베이징 올림픽에서 태권도 대표단이 출전 종목을 싹쓸이했기 때문이다. 원내 협상으로 한때 비판을 듣던 그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 원기를 되찾은 모습이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1993년부터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농구협회장은 3선의 민주당 이종걸 의원이, 조일현 전 민주당 의원과 임인배 전 한나라당 의원은 각각 대한핸드볼협회장, 사이클연맹회장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81년부터 12년간 대한수영연맹회장을 지냈다. 그는 아시아수영연맹회장과 세계수영연맹 집행위원을 맡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선수단 환영 오찬에서 “나도 체육인이다”고 했다. 또 “종목마다 눈물겨운 얘기도 많다.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했다”고 선수단을 격려했다. 정치인과 경기단체장. 일견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사실 많은 정치인이 경기단체장을 맡아 왔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측면이 있어서다. 정치인들에겐 일종의 명예직이다.

스포츠를 통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게다가 경기단체들은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고 있다. ‘표’가 된다는 얘기다. 2002년 월드컵이나 올해의 태권도처럼 해당 종목이 좋은 성적을 내면 단체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한다.

경기단체들로선 정치인들의 영향력에 기댈 수 있다. 예산 지원 등 혜택을 바라기도 한다. 여당 의원들이 주로 단체장을 맡는 이유다. 임 의장이 제안받은 배구협회장 자리는 총선 때까지만 해도 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이 맡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혁규 전 의원도 배구연맹 총재를 지냈다. 정치인이 경기단체장을 맡는 건 오래된 관례다. 역대 대한축구협회장은 여운형·신익희·윤보선·장택상 등 쟁쟁한 인물이 맡았다. 2006년 1월 작고한 민관식 전 한나라당 고문은 ‘한국 스포츠 근대화의 아버지’란 평가를 듣는다. 5선으로 문교부 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그는 대한체육회장-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하지만 정치인이 단체장을 맡는 데 대한 부정적 견해도 있다. 아무래도 경기에 대한 열정이나 단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낙하산 논란도 종종 불거진다.

고정애·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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