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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세상보기>이 세상의 절반은 여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남성 권위당(權威黨)과 여성 진출당(進出黨)사이의 길고 긴 패권 쟁탈전에서 최근 여성측이 거둔 전과에 대해 얘기 들으셨습니까.물론 이 전역(戰役)은 언제나 여성측이 공세적이고 남성측은 방어적인 것이 특징이긴 하지만 최근에 거둔 혁 혁한 전과는가히 역사에 남을만 합니다.
우선 배우자에게 남기는 상속재산을 30억원까지는 면세하자는 세법 개정안이 마련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돈 많은 남성은 쾌재(快哉)를 불렀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비참한 심정을 억누르지 못했을 겁니다.일생을나만 믿고 살아온 아내에게 우리 사회가 정한 테두리의 근처에도못가는 쥐꼬리만한 재산을 남길 생각을 하니 좀 자존심이 상했겠습니까. 그러면 30억원 얘기는 왜 나왔을까요.그것은 여자를 위해 좀더 분골쇄신(粉骨碎身)하라는 여성 진출당의 충고가 아닐까요.남자가 간 뒤의 여자의 여생은 험로니까 그 길을 좀더 안락하게 만드는 것이 평생 여자의 굄을 받고 살아온 남자의 할 일이라는 일종의 암시겠지요.뭐 유산을 남기지 말자는 얘기들도 합니다만,그것은 이번 세법 개정 정신과 어딘가 어긋나는군요.
여성 진출당의 또 다른 전과는 「노는 남자」가 많이 생겼다는것입니다.좀 어폐가 있을지 몰라도 「가사에 종사하는 남자」「애보는 남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통계에 따르면 올 1.4분기중에 남녀를 합친 가사종사 인구가1년전보다 9만6천명이 늘었답니다.비율로는 1.3%라는군요.놀라운 것은 남자가 1년전보다 8.5%나 늘동안 여자는 0.6%증가에 그쳤다는 것입니다.가사는 당연히 여자 몫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뒤진 생각인가 이제 알겠지요.
그러나 이 전과는 사실 여성 진출당의 노력으로 성취된 것은 아닙니다.불로소득을 얻은 사람들이 많고,조기 퇴직자가 늘고 뭐그런 경제적.사회적 요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그래도 어쨌든설거지를 돕고,애를 보고,집도 지키는 남자가 늘었다는 것은 여자의 품을 더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가사노동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여성들은 장차 『남편에게 바치는 노래』를 지어 부를 것입니다.
굽은 등이 애처로워 살며시/껴안은 순간/딱딱해진 잔등뼈가 너무나도/안타까웠소/지친 어깨에 뜨거운 정성 고이 접어/다져온 이 행복/내가 아니면 누가 알리오/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잊지 마십시오.모든 여성의 야망은 모든 남성을 착한 남편으로만드는 것임을.최근 여성측이 거둔 또 다른 전과는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여성수가 급격히 늘고 있는 것 바로 그것이지요.대법원통계에 따르면 95년 한햇동안 이혼건수는 모두 7만3천여건,전체 혼인신고의 18.1%를 차지하고 있답니다.말하자면 다섯쌍이혼인하는 동안 한쌍이 이혼하는 꼴이죠.
이혼사유의 대종은 아직도 배우자의 부정(不貞)이지만 이 비율은 줄고 있고 대신 부당한 대우에 대한 여성의 반발 때문이 크게 늘고 있답니다.폭력.외박.늦은 귀가등 아내를 무시하는 남편의 태도를 참지 못하겠다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거 지요.「웬만하면 참고 살지」가 안통하는 세상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예언하고있습니다.
패배일로에 있는 남성 권위당은 남성의 권위가 날로 실추되고 있다고 불평한답니다.그러나 여성의 위상이 남성의 권위에 동등해질 만큼 날로 향상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하지 않을까요.
어차피 이 세상의 절반은 여자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세상의 절반을 내놓으시죠,뭐.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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