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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동차 빅3의 몰락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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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호 32면

자동차산업은 미국의 간판산업이었다. 제너럴 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 등 디트로이트의 빅3, 그중에서도 GM은 미국의 아이콘이었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1953년 찰리 윌슨 GM 회장의 명언은 ‘기업 아메리카’의 한 상징으로 통했다.

지금도 26만 명의 글로벌 노동력으로 하루 2만5000대를 생산하는 GM은 지난 77년간 단 한 번도 세계 1위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창립 100주년인 올해 상반기 생산실적이 일본 도요타에 30만 대 뒤졌다. 생산만이 아니다. GM의 주식 값은 10달러 선으로 53년 이래 최저다. 주식 시가총액이 도요타(1450억 달러)의 25분의 1로 장난감 자동차 ‘매치박스’ 메이커 마텔을 밑돈다. 왕좌에서 밀려난 GM을 비롯해 빅3 모두 미국 정부에 400억 달러의 긴급 구제금융 SOS를 발하며 존립 위기를 맞고 있다.

포드는 지난해 적자가 273억 달러였다. 올해엔 적자가 더 늘 것으로 예상돼 내년까지 이윤을 포기한 상태다. 10년 전 독일의 다임러 벤츠가 인수했던 크라이슬러는 지난해 사모펀드 서비러스(Cerberus)에 인수가의 25%도 안 되는 헐값에 넘어가는 수모를 당했다. 한때 GM 혼자만도 미국 자동차 시장의 60%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빅3 모두 합친 점유율이 47%에 불과하다. GM만 지난 4년간 종업원 수를 27% 줄였다. 빅3의 텃밭 미시간주의 실업률은 8.5%로 미국 평균 5.5%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자존심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빅 카(대형차) 중독증이다. 크고, 힘 좋고, 안락한 자동차와 값싼 휘발유는 ‘미국 풍요’의 상징이었다. 『미국과의 계약』의 저자로 하원의장을 지낸 뉴트 깅그리치는 미국에서 자동차는 ‘사회적 표현’이며 그를 뒷받침하는 싼 휘발유 공급은 일종의 ‘사회계약’이라고 역설했다. 연료효율이 좋은 소형차는 두 번째 내지 세 번째 자동차란 관념이 미국인 머릿속에 박혀 버렸다. 미국의 하루 석유 소비량 2100만 배럴 중 70%가량이 수송용이다. 세계 인구의 4%에 불과한 미국이 세계 석유 소비의 25%를 점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뿐 아니라 빅 카 선호는 자동차의 연료 효율 개선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게을리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높은 연비(燃比·휘발유 갤런 당 주행거리) 기준에 대한 미국 특유의 사회적 거부감이 그것이다. 73년 1차 오일쇼크 여파로 75년 갤런당 13.8마일의 첫 연비 기준이 만들어졌다. 이 기준은 89년 갤런당 27.5마일로 높아졌으나 90년 갤런당 40마일로 올리자는 발의는 빅3가 극력 반대해 좌절됐다. 이런 노력을 비웃듯 빅3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기름 삼키는 괴물’ SUV와 픽업트럭 붐을 일으켜 ‘노다지 경기’를 누렸다. SUV는 이윤 폭이 커 딜러 입장에서도 일본 혼다의 소형차 시빅을 50대 파는 것보다 SUV 10대 파는 것이 돈벌이가 훨씬 나았다고 한다.

2007년 연비 기준을 다시 높이자는 여론이 조성됐지만 2020년까지 목표는 갤런당 35마일로 낙착됐다. 현재 44마일인 연비 기준을 2012년까지 48마일로 높이려는 유럽연합(EU)과는 너무도 큰 차이다. 게다가 빅3는 미국 내 렌터카와 관용차 공급의 과점적 우위에 안주해 소비자 위주의 생산과 마케팅을 소홀히했다. 노동비용 절감을 위한 노조와의 대타협 타이밍을 놓쳤고 해외업체 인수전에서도 범실이 잦았다. 이런 틈바구니를 비집고 도요타·혼다·닛산 ‘일본차 빅3’와 한국 현대자동차가 소형 및 중형 승용차와 경량급 SUV 시장을 파고든 것이다.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소형차 마인드’에서 미국 빅3가 뒤질 수밖에 없다.

빅3는 당장의 불을 끄고 하이브리드 카의 약속된 땅에 도달할 때까지 400억 달러의 긴급 자금이 필요하다며 지원을 요청 중이다. 그러나 공장자동화와 환경친화적 기술 등 ‘녹색차 전쟁’에서 일본 빅3가 몇 발 앞서 가고 있다. 도요타는 97년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 생산에 들어가 올해 미국을 중심으로 45만 대를 팔 계획이다. 한정된 배터리 팩 공급 때문에 증산이 어렵고 GM과 포드·벤츠 등이 뛰어들고 있지만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경쟁력은 독보적이다. 도요타에 가장 근접했다는 혼다의 생산능력이 5만 대에 불과하다. 빅3 구제금융에 친기업적 신문인 월스트리트 저널마저 사설로 반대하고 나섰다. 빅3의 몰락은 세계 자동차산업의 중심 이동이자 또 다른 미국의 쇠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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