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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죽음을 앞둔 환자 중환자실이 안식처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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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오랫동안 신장투석을 해온 월번 우튼이 생의 마지막 날 아내를 꼭 껴안고 있다. 2006년 당시 55세였던 우튼의 아내는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매일 아침 남편의 가슴에 안겼다고 한다. 두 사람의 모습이 평온해 보인다(사진작가 제이슨 아서스 작품).

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
최철주 지음, 궁리, 300쪽, 1만2000원

 “우리는 죽음을 잘 모른다. 교육받지도 않았고 죽음을 준비할 마음의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죽음에 부딪히면 원초적 본능이나 관습적 대응에 따라 처리했다….” (『해피…엔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에서)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미숙하다. 인류의 역사가 수많은 개인들의 삶과 죽음으로 점철된 대장정이며 죽음으로써 삶이 완성된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말 뿐이었다. 『해피…엔딩』과 『나도 이별이 서툴다』는 ‘떠남’(죽음)을 주제로 한 책이다. 일상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떠남을 지켜보고, 또 언젠가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의 눈길로, 환자를 다루는 의사의 시선으로 바라본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대해 말한다. 핵심은 같다.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좀더 성숙하게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아름답고 품위있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의 희망사항일 것이다. 그러나 하루하루를 ‘사는 데’ 분주한 우리는 떠나는 자신의 뒷모습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다. 어찌보면 ‘어떻게 죽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일종의 금기다. ‘죽음’은 어둡고 무거운 주제라서 생각하기 싫고, 현재의 삶에 충실한 것이 최선의 ‘준비’라고 여기기도 한다.

이 책을 쓴 저자도 그랬다. 몇 해 전 호스피스 교육을 받으며 삶과 죽음의 연결고리에 시야가 열리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러나 많은 이들이 “도무지 죽을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살다가 “험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죽음의 존엄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만가지 언동에 인격을 따지고 품격을 논하면서 죽음의 품위에 대해서는 결코 언급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정치에서부터 문화, 체육에 이르기까지 잘도 격을 따지는 사회에 이렇게 숨겨진 이면이 있다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이같은 아쉬움에서 출발, 삶과 죽음의 새로운 문화지도를 그리기 위해 떠났던 여행의 기록이다.

30여 년을 방송사, 신문사 기자로 활동한 저자는 ‘존엄한 죽음이란 어때야 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현장’으로 갔다. 미국에서는 호스피스 케어를 제공하는 의료기관들을 찾았다. 그곳에서는 말기환자들에게 통증치료를 통해 고통을 줄여주면서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 성숙해 왔음을 목격했다. 서점에는 ‘death & dying’코너가 있고, 청소년들은 교실에서 자연스럽게 존엄사 토론을 벌인다.

일본의 존엄사협회 회원들과도 직접 만났다. 12만명이 넘는 이 단체의 회원들은 만일에 생길 수 있는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 “수 개월에 걸쳐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을 때는 일절 생명유지 조치를 하지 말아달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존엄사 선언서’에 서명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오쿠다 히로시 전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도 회원이다.

반면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해 편견도, 오해도 많다. 말기 환자나 치매 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우리들은 “‘불효’와 ‘효도’의 경계선에서 방황하고” 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최선을 다하자’는 명분하에 온갖 기계장치에 의존해 중환자실 치료를 받게 한다. 말기 환자들의 여생을 더욱 힘들게 하는 ‘위장된 효도’,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얼굴이다.

책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서비스, 존엄사법 제정, 사회복지제도, 리빙 윌(생전유언) 등의 다양한 논의와 해결책까지 담았다. 논지는 분명하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웰다잉(well-dying)의 문제가 웰빙(well-being)의 틀 안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존엄한 죽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제도 마련에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존엄사에 대한 논쟁이 겨우 시작 단계인 우리 사회에 생각할 거리, 논쟁할 거리를 ‘선물’처럼 안겨주는, 반갑고 소중한 안내서다.

이은주 기자

나도 이별이 서툴다
폴린 첸 지음, 박완범 옮김
공존, 324쪽, 1만 3000원

 “사망 시각은 오후 2시 20분입니다.”

이마부터 발치까지 이불보를 덮어쓴 사망자와 그를 둘러싸고 오열하는 가족들. 그 곁에 서서 한치의 흔들림 없이 죽음을 선언하는 이가 있다.

한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지만, 흰 가운을 입은 ‘그들’에게 죽음은 ‘자발적인 심장 박동과 호흡이 없고 통증 반응이 없는’ 인체의 객관적인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제 3자의 눈에 비친 그들은 죽음에 익숙하고 의연해보인다.

『나도 이별이 서툴다』는 의사의 눈으로 바라본 죽음의 의미를 그렸다. 저자 폴린은 미국 UCLA 외과교수를 지낸 간 이식 전문의다. 그는 의대 본과생 시절 해부학 실습 수업에서 마주한 카데바(해부학 실습용 시신)부터 20여 년의 의사 생활 동안 목격한 수없이 많은 죽음의 순간을 담담한 문체로 복기해냈다. 의사들은 수련과정 내내 감정을 배제하고 환자를 대하도록 교육받는다.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안정적인 의술을 펼치기 위해서다. 폴린은 자신을 돌아보며 관성에 젖어 사무적인 시술만 베푸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한다.

“나는 내가 죽음 지켜본 환자들의 수를 헤아려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가장 많은 죽음을 지켜본 그 해는 기억한다. 그 해는 내가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생명을 구하면서 죽는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었다. 나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에 소홀했다. 그들에게도 가족과 친구가 있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있으며, 아마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희망도 있음을 잊었다. 나에게 죽어가는 그들은 그저 또 다른 한밤중의 수술거리였을 뿐이다.”

성공적인 장기 이식 수술로 어린 아이를 살려낸 밤. 바로 옆 수술 방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기증자의 마지막 모습은 폴린을 아프게 한다. 그는 배운 대로, 가능한 모든 치료를 다했음에도 환자를 살려내지 못할 때 엄습하는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토로한다.

폴린은 스스로 “이별에 서툴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일상화된 죽음의 경험을 통해 환자와 진정한 교감을 나눌 수 있도록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다.

“보살피고 고통을 덜어주고 함께 있어주는, 그런 걱정을 해 주는 것은 친구들뿐 아니라 의사에게도 가장 중요한 역할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해낼 수 있을 때 의사들은 진정한 치유력을 갖게 될 것이다.”

충북 음석 꽃동네 애덕의 집 앞에 있는 십자가 무덤. [궁리 제공]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임상교수로 재직 중인 역자는 “이제야 비로소 ‘치료(cure)’가 아닌 ‘돌봄(care)’의 중요성을 조금씩 느끼고 있다. 치료하지 못한다고 해서 의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역자의 마음을 담은 번역도 인상적이다.

책은 우리 생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그들의 고통스런 수련과정과 고뇌의 순간을 고스란히 담았다. 때론 전지전능한 능력자로 여겨지는 의사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원제 『Final Exam』.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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