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가에서 올린 뮤지컬 명성황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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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내 나이 어릴 적 세자만 할 때 여염의 아이로 자랐어라∼.”

30도를 오르내리는 푹푹 찌는 한낮, 적막한 시골 기왓집에 때아닌 아리아가 흘러 나왔다. 서글프면서도 가슴 한켠을 뭉클하게 파고드는 노래가락. 명성황후 생가에서 펼쳐진 뮤지컬 ‘명성황후’ 갈라 공연이었다.

특별한 이벤트는, 명성황후 생가가 온전히 복원된 것을 기념해 기획됐다.

1851년 태어난 명성황후는 8세까지 바로 이곳, 경기도 여주군 능현리에서 자랐다. 가옥은 참나무로 둘러싸여 있었고, 안채에서 남한강 끝자락이 얼핏 보일만큼 집안엔 운치가 감돌았다.

명성황후는 8세때 아버지를 여읜 뒤 이 생가를 떠났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한때 인현왕후가 기거했던 안국동 ‘감고당’이란 곳에서 생활했다. 명성황후의 5대조 할머니가 인현왕후였던 것. ‘명성황후 생가 복원 프로젝트’는 바로 이 ‘감고당’ 가옥을 지난달 여주로 몽땅 내려오면서 완결됐다.

또한 이번 현장 기행은 지난해 11월 명성황후 시해 장소인 건청궁 복원을 기념으로 시작된 ‘명성황후의 숨결을 찾아서’란 프로그램의 두번째 행사이기도 하다.

32명의 일반인도 동참했다. 이중엔 과테말라·우크라이나·몽골 등 한국에 유학온 외국인도 절반 가량 있었다. 낯선 나라의 낯선 유적지가 신기한 듯, 이들은 생가와 기념관을 꼼꼼이 살펴봤고 뮤지컬 공연도 흥미롭게 관람했다.

방학을 이용해 잠시 한국에 놀러왔다는 일본인 인도 사토미(22)씨는 “명성황후는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일본에선 근현대사를 공부할 때 한국과의 관계가 별로 비중있게 소개되지 않는다. 오늘 경험이 사실 충격적이었다. 왜 한국인들이 한일 축구·야구 경기에서 비장할 정도로 응원하는지 조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새로운 문화관광상품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한국관광공사 정진수 팀장은 “문학과 공연 그리고 역사의 결합은 최근의 관광 경향이다. 스토리텔링이 있는 유적지로 좋은 사례가 될 듯 싶다”고 말했다.

여주=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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