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천 친척들 어찌 됐나 … " 잠 못이룬 실향민들

중앙일보

입력

평북 용천군 용천역 폭발 사고를 접한 실향민들은 고향의 참사(慘事)에 말문을 잃었다.

특히 3층짜리 용천소학교의 지붕과 3층이 날아가 폐허가 된 건물의 사진을 본 실향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휴일인 25일 서울 구기동 이북5도 위원회와 언론사 등에 전화를 걸어 고향 소식을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북 5도청의 조경하(74)용천군수는 "너무 떨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라며 "보도를 보고 놀란 군민들이 고향 걱정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군수에 따르면 용천군 출신 실향민은 3000여명. 실향민 1세대는 물론 2세, 3세까지 포함돼 있다.

조군수는 "1944~47년 용천에서 살았는데 평생 고향을 잊지 못하다가 2년 전 중국 단둥을 방문, 용천에 살고 있는 형수를 만나고 왔다"며 "친척들이 무사하기만을 바랄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피해가 큰 용천소학교는 한국전쟁 직전에 개교해 이 학교를 모르는 실향민이 많고, 실향민 가운데 더욱이 이 학교를 졸업한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천에서 운전기사를 하다 95년 탈북한 崔모(66)씨는 "내 아이들이 모두 어려서부터 용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탈북 도중 행방불명된 아들을 제외한 딸 셋이 아직 거기에 살고 있을 것"이라며 "딸들이 너무 걱정스러워 구호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지만 금전적 여유도 없고 도울 방법도 몰라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용천역에서 3km 떨어진 용천군 북중면 출신으로 북중소학교를 다녔던 장정열(71)전 병무청장은 "처참한 사고가 난 것을 보고 놀란 가슴을 진정할 수 없다"며 "특히 어린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들을 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7년 월남한 장전청장은 "당시에는 용천소학교가 없었는데 다른 학교가 이름을 바꾼 것인지, 신설된 학교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회고했다.

방송인 출신의 차인태(60)평북지사는 "어떻게 그런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지, 사고의 정확한 내용을 궁금해 하는 실향민들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26일 오전 이북 5도 위원회를 열어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車지사는 "북한 주민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관계 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천 출신의 저명 인사로는 고(故) 함석헌 선생, 고 장기려 박사, 장도영 전 국방부 장관,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 등이 있다.

박성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