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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규제 완화 싸고 맞붙은 경기-충남 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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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왼쪽부터 김문수 경기지사, 이완구 충남지사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를 놓고 김문수 경기지사와 이완구 충남지사가 정면 충돌했다. 김 지사가 풀리지 않는 수도권 규제 족쇄와 관련, ‘험한 표현’까지 써가며 중앙정부에 대해 연일 맹공을 퍼붓자 이 지사가 강력 제동을 걸고 있다. 비수도권 대표주자격인 이 지사는 반박 편지를 보내고 ‘맞짱 토론’을 제의하며 김 지사의 공격을 맞받아치고 있다. 지리적으로 붙어 있는 경기도와 충남도는 공동으로 황해경제자유구역청을 여는 등 그동안 상생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자연인 김문수와 이완구는 두터운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이 싸움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왜 그렇게 됐을까.

 “한집안 형제간에도 불균형은 있다. 잘사는 형제가 못사는 형제를 도와주면 된다.”(김문수 경기지사)

“상생과 균형의 가치 속에서 국가 발전을 생각해야 한다.”(이완구 충남지사)

두 사람은 27일 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공개토론을 했다. 이 지사가 26일 충남도 홈페이지를 통해 “김 지사의 발언이야말로 공산당식 발상”이라며 공개 토론을 요구한 데 대해 김 지사가 수용 의사를 밝혀 이뤄졌다. 이에 대해 김 지사는 “공산당보다 심하다는 말은 중국 공산당 정권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더 규제가 심해 기업하기 어렵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두 지사는 29일 한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또다시 격돌한다.

◇승부 못 가린 ‘맞짱 토론’=라디오 방송에서 김 지사는 “국가 안보와 서울시민을 위해 경기도민이 희생하고 있는데 규제는 오히려 서울보다 많다”며 “경제가 어려운데 경기도를 규제로 묶는 것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충남 등 지방을 발전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방을 발전시키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를 풀어 경제를 살린다는 것이 대통령 공약이므로 이를 지켜 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경기도의 고충을 안다”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상생과 균형, 조화로 공동체 전체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맞받았다. 그는 “충남에는 낙후된 오지가 (경기도보다 더) 많다”며 “경기도의 지역적 문제는 개별 입법으로도 풀 수 있으므로 국가균형발전의 큰 틀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했다. 특히 “김 지사의 ‘(정부가) 공산당보다 못하다’는 발언은 경솔하고 국민을 혼란스럽게 한다”며 “발언을 신중히 해 달라”고 요구했다.

두 지사의 설전은 충남 연기·공주에 건설하고 있는 행정복합도시인 세종시 문제에서 더 격해졌다. 김 지사는 “행정기관 몇 개를 세종시로 옮긴다고 그곳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며, 국민만 불편하게 하는 낭비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지사는 “이미 국회 논의를 거쳐 진행 중인 국가사업을 부정하면 국가 운영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반박했다. 이 지사는 “상생하는 길을 찾자”고 제안했다.

◇두 지역의 이해관계 대립=두 지사의 싸움은 7월 21일 정부가 ‘선(先) 지방 균형발전, 후(後)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발표 직후 김 지사는 “차라리 경기도를 없애라” “지방을 발전시키고 균형 발전을 하겠다면 경기도의 미군기지·훈련장·군 비행장 등도 모두 지방으로 이전시켜라”며 연일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경기도민에게 배은망덕한 행위”라며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경기도는 이 지역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지방의원·경제단체장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수도권규제철폐 촉구 비상결의대회’를 여는 등 대대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가 풀리면 당장 영향을 받는 충청권으로서는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이 지사는 “균형 발전을 ‘수도권과 비(非)수도권의 하향 평준화’ ‘공산당식 발상’으로 매도하는 김 지사의 논리는 황당하다”며 반격에 나섰다. 수도권이 각종 규제로 묶여 있는 동안 경기도와 가까운 충남의 천안·아산·당진 등 7개 시·군에는 올해 상반기만 283개 수도권 기업이 새로 입주했다. 그러나 규제가 풀리면 충남 지역 입주 기업은 크게 준다는 것이다.

◇‘대권 행보’ 시각도=두 사람의 나이는 김 지사 1951년생, 이 지사 50년생으로 비슷하다. 나란히 신한국당 후보로 15대 총선에서 당선돼 정치인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김 지사는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된 경력이 있고, 이 지사는 행정고시(15회)에 합격한 뒤 관료생활을 했다. 걸어온 길은 판이하게 달랐지만 지사 취임(2006년 7월) 이후 사이는 돈독해졌다. 경기도와 충남도 간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황해경제자유구역청도 개청했다. 사석에서 만나면 와인을 마시며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다.

이 때문에 두 지사의 대결을 두고 ‘대권 경쟁을 의식해 몸값을 올리기 위한 정치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한편, 2010년 도지사 재선을 의식한 행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김 지사는 “대권 도전을 하려면 표를 모아야 하는데 내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무슨 표를 모으는 방법이냐”며 “엉뚱하게 남의 발언에 정치적인 의도를 덮어 씌워 음해하지 말라”고 반박한다. 이 지사도 “도지사 재선이나 대권 겨냥 운운은 경박하다”고 주장했다.

정영진·김방현·신진호 기자



▒바로잡습니다▒

두 지사가 29일 한 뉴스 전문 케이블 방송에서 또 다시 격돌한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송(MBN)에는 이완구 충남 지사만 출연했습니다. 당초 방송사 측은 두 지사를 불러 토론을 붙일 계획이었으나, 김문수 지사가 예정된 일정 때문에 출연할 수 없다며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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